예릉
- 왕릉명
- 예릉
- 능주명
- 제25대 철종·철인장황후
- 왕릉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 조성연대
- 1864년 왕릉, 1878년 왕후릉
- 왕릉형태
- 쌍릉
능의 조성
예릉은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으로 조선왕릉 상설제도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으로 조성된 쌍릉이다.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왼편에는 장경왕후의 희릉이, 오른편에는 인종의 효릉이 위치하고 있다. 예릉 자리는 원래 중종의 능인 정릉이 있던 곳이다. 정릉은 1545년 희릉 우강에 조성되었지만 1562년 풍수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천릉하였다. 이 때문에 예릉을 조성하기 위한 산릉공사 초반부터 옛 정릉 석물이 다량 노출되었고 구릉지 석물을 재활용하라는 철인왕후의 전교로 인해 예릉은 위풍당당하고 육중한 16세기 중반 석물과 규모가 작고 장식성이 뛰어난 19세기 중반 석물이 혼재하게 되었다. 봉분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능을 둘러친 난간석으로 쌍릉을 연결하고 있다. 장명등은 능 앞으로 많이 나와 있어 능상과 사초지가 웅장하며 그 문양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향어로는 신도 양옆으로 어도가 나 있는 3단인데, 이는 고종 때 황제 칭호를 사용하면서 추존 황제릉을 따른 것이다.
능주 소개
철종(哲宗, 1831~1863)은 조선 제25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이변(李昪)이고 초명은 이원범(李元範)이다. 자는 도승(道升), 호는 대용재(大勇齋)이다. 정조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이다. 전계대원군 이광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 염씨이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이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 때 나이 19세였다. 1844년 형 회평군 명(明)의 옥사로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다가 갑자기 명을 받아 봉영의식을 행한 뒤 6월 8일 덕완군에 봉해졌다. 이어 이튿날인 6월 9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관례를 행한 뒤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나이가 어리고 갑자기 왕이 되었으므로 처음에는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51년 9월에는 대왕대비의 근친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그 뒤 김문근이 영은부원군이 되어 왕비의 아버지로서 왕을 돕게 되자 순조 때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또다시 반복되었다. 철종은 1852년부터 친정하였다. 이듬 해 봄에는 관서지방의 기근대책으로 선혜청전 5만 냥과 사역원삼포세 6만 냥을 진대하게 하였다. 또 그해 여름에 한재가 심한데도 제곡이 없어 구활하지 못하는 실정을 안타깝게 여겨 재용의 절약과 탐욕이 많고 비리를 저지른 것에 대해 징벌을 엄명하였다. 1856년 봄에는 화재를 입은 여주의 민가 약 1,000호에 은자와 단목을 내려주어 구활하게 하였다. 또한 함흥의 화재민에게도 3,000냥을 지급하였다. 이 해 7월에는 영남의 수재지역에 내탕금 2,000냥, 단목 2,000근, 호초 200근을 내려주어 구제하는 등 빈민구호책을 적극 실시하였다. 철종 재위 기간 동안 정치의 실권은 안동 김씨의 일족이 좌우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삼정의 문란이 더욱 심해지고 탐관오리가 횡행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마침내 농민들은 1862년 봄 진주민란을 시발로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이에 철종은 삼정이정청이라는 임시 특별기구를 설치해, 민란의 원인이 된 삼정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을 세워 시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관료에게는 그 방책을 강구해 올리게 하는 등 민란 수습에 힘썼다. 그러나 뿌리 깊은 세도의 굴레에 얽매여 제대로 정치를 펴 나갈 수 없었다. 1863년 12월 8일 재위 14년 만에 33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어진 4본이 천한전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불에 그슬린 1본만 전해지고 있다. 혈육으로는 궁인 범씨 소생의 영혜옹주가 있어 금릉위 박영효에게 출가했을 뿐 후사가 없었다. 시호는 ‘희륜 정극 수덕 순성 문현 무성 헌인 영효(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이다. 묘호는 ‘철종(哲宗)’이다. 능호는 ‘예릉(睿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원당리에 있다.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1878)는 조선 제25대 왕 철종의 비이다. 본관은 안동이며, 아버지는 영돈녕부사 김문근(金汶根), 어머니는 이용수(李龍秀)의 딸이다.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근친으로 1851년 왕비에 책봉되어 어의동 본궁에서 가례를 올렸으며, 1858년 원자를 낳았으나 곧 죽었다. 1863년 ‘명순(明純)’의 존호를 받고 이듬해 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으며, 1866년 휘성(徽聖)에 이어 정원(正元), 1873년에는 다시 수령(粹寧)의 존호를 받아 ‘명순 휘성 정원 수령 대비(明純徽聖正元粹寧大妃)’가 되었다. 1878년 창경원 양화당에서 승하하였다. 순조 때부터 이어온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그가 왕비로 된 이후 절정에 달하였다. 시호는 ‘명순 휘성 정원 수령 경헌 장목 철인 왕후(明純徽聖正元粹寧敬獻莊穆哲仁王后)’이고, 능호는 ‘예릉(睿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원당리 서삼릉 내에 있다.
왕릉탐방
예릉(睿陵) 구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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