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다보탑 → 상세정보 바로가기
▶ 연혁
| 지정별 | 국보 |
|---|---|
| 연혁 | 景德王 10년(751) 창건 |
| 수리기록 |
· 1925년 해체보수 · 1970~73년 표면세척 및 손실부 보강 |
▶현황
불국사(佛國寺) 대웅전(大雄殿) 앞에 서쪽 석가탑(釋迦塔)과 대조를 이루어 동쪽에 자리한 탑으로, 감은사(感恩寺) 다음가는 전형적인 쌍탑가람(雙塔伽藍)의 배치를 보여준다. 기단부는 4방에 보계(寶階)를 마련하였는데, 보계에는 난간을 설치했던 돌기둥이 남아 있다. 그 위는 네 모서리와 중앙에 4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교차되는 받침을 얹어 갑석(甲石)을 받치고 있다. 이 기단에는 원래 네 모서리에 석사자(石獅子)를 배치하였으나 지금은 1구(軀)만 남아 있다.
갑석 위에는 4각형 난간 속에 8각 신부(身部)를 두었으며, 다시 8각 갑석을 덮고 8각 난간을 돌린 다음, 그 안에 8개의 죽절형(竹節形) 돌기둥을 돌려 팔각연화석(八角蓮華石)을 받치고 있다. 연화석(蓮華石) 위에는 8개의 기둥머리 모양의 받침이 있어 8각 옥개석(屋蓋石)을 받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8각의 노반(路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탑의 구조는 완전히 의표(意表)에서 벗어난 참신한 착상으로 이루어져서 전무후무한 걸작을 남겼고, 조법(彫法)에 있어서도 마치 목조건축을 보는 듯 우려하며, 복잡한 아래위의 가교(架橋)가 중심에 통일되어 한 점의 문란함도 없다.
이 탑을 다보탑(多寶塔)이라고 하는 것은, 다보여래(多寶如來)가 석가여래(釋迦如來)와 나란히 앉아 석가의 설법을 증명하는 상으로 해석되는데, 동양의 불교국가에서 석조(石造)로서는 가장 뛰어나고 오랜 작품이다.
이 탑은 서쪽의 삼층석탑(三層石塔)과 함께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25년에 수리를 한 바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 → 상세정보 바로가기
▶ 연혁
| 지정별 | 국보 |
|---|---|
| 연혁 | 景德王 10년(751) 창건 |
| 수리기록 |
· 1966년 1층탑신이상 해체보수 · 1970~73년 표면세척 및 손실부재 부분보충 |
▶ 현황
불국사(佛國寺) 대웅전(大雄殿)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일반형 석탑으로, 각부의 비례가 아름다운 우수작의 하나이다.
기단부는 몇 장의 돌로 결구(結構)되었고, 아래위 면석(面石)은 탱주(탱柱) 둘을 세워 3구(區)로 구분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옥신(屋身)에는 우주(隅柱)가 표현되어 있으며, 옥개받침은 층마다 5단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路盤)·복발(覆鉢)·앙화(仰花)까지만 남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특히 탑 주위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화(蓮華)가 조각된 8개의 둥근 돌을 돌리고, 이들 연화석(蓮華石) 사이에 긴 돌을 끼워 경계를 삼았는데, 이것이 이른바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이다.
정역(淨域)을 나타내기 위한 시설이라고도 해석되며, 한편으로 연화대(蓮華臺) 위에 8보살(菩薩)을 안치하여 공양하는 의태(意態)를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탑은 일명 석가탑(釋迦塔)이라고 하는데, 동쪽의 다보탑(多寶塔)에 대한 호칭으로, ‘법화경(法華經)'에 보이는 석가여래(釋迦如來) 상주설법(常住說法)의 상(相) 곧 다보여래(多寶如來)와 나란히 앉기 이전의 상(相)으로 해석된다.
동서 두 탑의 대조가 묘할 뿐 아니라 조형(造形)이 소박 장중하여, 신라(新羅) 석탑 중에서 하나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며, 이 탑의 건립연대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정된다.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 상세정보 바로가기
▶ 연혁
| 지정별 | 국보 |
|---|---|
| 연혁 | 신문왕 2년(682) 창건 |
| 수리기록 | 1996년 전면 해체보수 |
▶ 현황
화강암의 이중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方形) 중층(重層)의 이 탑은 동서 양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인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같은 돌로 각각 12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다. 상층기단은 면석을 12매로, 갑석은 8매로 구성하였다. 탱주(撑柱)는 하층기단에 3주(柱), 상층기단에 2주를 세웠다. 초층옥신(初層屋身)은 각 우주(隅柱)와 면석을 따로 세웠으며, 2층은 각면이 한 돌, 3층은 전체가 한돌로 되었다. 옥개석은 받침돌로 별석(別石)으로 각층 4매씩의 돌로 되었다. 그리고 옥개석 받침은 각층마다 5단의 층급(層級)으로 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양탑 모두 노반(露盤)과 높이 3.3m의 철제 찰주(擦柱)가 남아 있다. 목조가구(木造架構)를 모방한 형적(形蹟)을 보이며 옥개석 받침을 층단식(層段式)으로 한 수법은 전탑의 전단계 모습을 추정케 한다. 기단을 이중으로 하는 형식은 새로운 형식으로 이와 같은 양식은 이후로 한국 석탑의 규범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탑의 전체높이는 13.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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