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사적비(海印寺 事蹟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769년(영조 45)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전체높이 245.0 비신높이 224.0 너비 109.3 두께 32.2
- 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21 해인사 홍제암
- 출토지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 서체
- 전서(篆書),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해봉유기(海峯有璣) / 품관(品官) 품헌(品軒) 영원(永元) 원성(願性) / 신몽준(申夢駿)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해인사(海印寺)는 합천군(陜川郡)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사찰(寺刹)로, 신라(新羅) 애장왕(哀莊王) 때 승려(僧侶) 순응(順應)이 세운 곳이다. 사찰에는 고려(高麗) 문종(文宗) 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판(板)을 보관하였는데, 1458년(세조 4)에는 판각(板閣)을 중수(重修)하고 경문(經文)을 인쇄한 일이 있었다. 사찰은 1743년(영조 19)과 1763년(영조 39)에 두 차례 불에 탔고 당시의 관찰사(觀察使)였던 김상성(金尙星)과 김상철(金尙喆)이 각각 자신의 재물을 내어 복구하였으므로, 해인사 사적비(海印寺事跡碑)는 두 도백(道伯)을 공로를 기려 세웠다. 비문에는 해인사의 중요성과 두 도백의 공로, 그리고 왕비(王妣)와 주상(主上), 세자(世子)의 장수(長壽)를 기원하고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맡았던 일과 성명을 기록하고 있다. 승려 유한(有漢)이 비문(碑文)을 짓고, 신몽준(申夢遵)이 글씨를 쓰고 전액(篆額)하였다. 현재 탁본은 성균관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탁본된 연대는 1970년대로 추정된다.
판독문/해석문
| 판독문 | 유동옥 | ||
| 해석문 | 노효경 |
참고문헌
| 단행본 | 2009 | 『한국의 사찰문화유산 경상남도』Ⅰ |
| 단행본 | 1985 | 조동원 편저,『한국금석문대계』4, 원광대학교 출판국, 1985 |
| 단행본 | 1919 | 조선총독부,『조선금석총람』하, 일한인쇄소인쇄, 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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