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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증국사(圓證國師) 석종명(石鐘銘) (전액(篆額))
미지산(彌智山)
3 사나사(舍那寺)
4 석종명(石鐘銘) 병서(幷序)
중현대부(中顯大夫)
5 성균관(成均館) 제주(祭酒) 지제교(知製敎) 정도전(鄭道傳) 찬(撰)
고려국사 이웅존자(利雄尊者)께서 소설산(小雪山)
6에서 입적(入寂)하였다. 문인(門人)들이 화장하였는데, 많은 사리(舍利)가 출현하였다. 양근군(楊根郡)에 살고 있는 부로(父老)
7들이 지군사(知郡事)
8인 강만령(姜萬岭)
9에게 청하여 비석의 원석(原石)을 캐서
10 다듬어 석종탑(石鐘塔)을 만들어 사리(舍利) 10과(粿)를 넣어 사나사(舍那寺)에 세웠다. 그 소요 경비가 서속(黍粟)이 30섬, 면포(棉布)가 3백필(百匹)이 사용되었다. 계해년(癸亥年)
11 9월 무신(戊申)
12에 시작하여 그 해 12월 경신(庚申)
13에 끝났는데, 문인(門人)인 달심(達心)
14이 사실상 그 공사(工事)를 주관하였다.
양근군(楊根郡)은 본시 익화현(益和縣)
15이었는데, 스님의 어머니의 고향이다
16. 군(郡)의 서쪽에 큰 강이 있는 바 그 이름이 한강(漢江)이다. 근원이 태백산(太白山) 북쪽에서 시작하여 6백리를 흘러 서해로 들어간다
17. 군(郡)의 동쪽에 미지산(彌智山)이 있는데 양광도(楊廣道)와 교주도(交州道)의 인접한 경계(境界)에 우뚝 솟아 있다
18. 그 산수(山水)의 청숙(淸淑)한 기백은 영걸(靈傑)을 잉산(孕産)할 기특(奇特)한 정기(精氣)를 지니고 있으니, 특별한 인물들이 나는 까닭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원증국사는 양근군(楊根郡) 대원리(大元里)
19에서 탄생하였다. 출가하여 수도하다가 중국에 유학하여
20 임제(臨濟)의 제18대 법손(法孫)
21인 석옥청공선사(石屋淸珙禪師)의 법을 이어받았으니, 국사(國師)는 임제의 19대 법손이 된다. 석옥(石屋)이 국사에게 법의(法衣)와 선장(禪杖)을 주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상계(相契)하였음을 표하였다. 그 후 곧 귀국하니
22, 현릉(玄陵)이 예를 갖추어 왕사(王師)로 추대하고
23 곧이어 국사(國師)로 책봉하였다
24. 어머니 정씨(鄭氏)를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으로 봉(封)하고, 익화현(益和縣)을 양근군(楊根郡)으로 승격시켰다. 가끔 인선(遴選)된 조신(朝臣)들이 자주 와서 군인(郡人)을 위무(慰撫)하였으니, 그 까닭은 국사를 존중하며 그가 태어난 고향 지방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희계(李希桂)
25와 강만령(姜萬岭)은 모두 옛 양리(良吏)의 가풍(家風을 지닌 현관(賢官)으로서 민초(民草)를 이롭게 하고, 폐단을 개혁하여 군민(郡民)들이 편안히 살 수 있었으니, 이는 모두 국사가 끼쳐준 음덕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사는 이 군(郡)을 살기좋은 곳으로 창조한 덕인(德人)이므로, 군민(郡民)들도 흠모하여 국사(國師)가 입적하신 지가 비록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스님을 섬기는 자가 곧 사리(舍利)를 모시려는 것이니, 이는 본심(本心)에서 발(發)한 것이므로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비명을 짓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명(銘)하여 이르기를
용문산봉(龍門山峰) 높고 높아
26 청숙(淸淑한 지령(地靈)
한강(漢江)물은
27 굽이굽이 비단결 같네
28!
맑고 높은 그 기운(氣運)이 이인(異人)을 낳니
그 기운(氣運)을 이어받아 국사(國師)가 탄생 ①
임제법손(臨濟法孫) 석옥청공(石屋淸珙)의 법(法)을 받아서
임제의현(臨濟義玄) 19대(十九代)의 법손(法孫)이 되다
29.
익화현(益和縣)을 승격하여 양근군(楊根郡) 되니
군민(郡民)들은 너나 없이 칭송하도다. ②
높고 넓은 국사(國師)의 덕(德) 두루 미쳐서
양근군민(楊根郡民) 모든 사람 사모(思慕)하였네!
석종(石鐘) 세워 스님 위해 사리(舍利)를 봉안(奉安)
사리탑(舍利塔)이 있는 곳엔 스님이 있네! ③
돌을 깎아 석종비(石鐘碑)가 세워졌으니
30
내가 지은 이 비명(碑銘)을 비(碑)에 새겨서
31
미지산중(彌智山中) 사나사(舍那寺)에 유진(留鎭)하오니
천년만년 지나도록 전(傳)하여 지다 ④
홍무(洪武) 19년
32 병인(丙寅) 10월 일에
문인(門人) 달심(達心)이 비석을 세우고
재림사(梓林寺)
33 주지(住持) 선사(禪師) 의문(誼聞)
34은 비문을 쓰며
훈곡(薰谷)과 명호(明昊)는 비문을 새기다
(陰記)
<이 음기(陰記)는 조연자(助緣者)의 직책과 명단(名單)이므로 원문 그대로 붙여두고 번역은 생략한다.>
조연(助緣)
판도판서(版圖判書)
35 이중실(李中實)
36
판사재사사
37(判司宰寺事) 이척(李隲)
38
삼사
39우윤(三司右尹) 김자윤(金子贇)
40
사복세(司僕世)
41 이한(李澣)
42
인주
43사(仁州事) 신천용(申天用)
44
양근군사(楊根郡事) 오성식(吳成式)
45
서운
46부정(書雲副正) 함영필(咸英弼)
47
중랑장(中郞將) 김부(金富)
48
낭장(郎將) 이백공(李伯恭)
49
낭장(郎將) 이승보(李升甫)
50
낭장(郎將) 김천길(金天吉)
51
산원(散員) 이자영(李子榮)
52
산원(散員)
53 변인수(卞仁守)
54
참군(參軍)
55 이도(李稻)
56
판전의사
57사(判典醫寺事) 장천실(張天實)
58
삼반(三班)
59 함철(咸哲) 이옥(李玉) 함의(咸義) 지원(池元) 함정(咸貞) 함기(咸奇)
함설(咸雪) 이명(李明)
학생(學生) 김득주(金得珠) 방희(方熙) 김중남(金仲南) 최공신(崔公信)
안지수(安之守) 이란(李蘭) 소금(小金) 이성(李成) 함금(咸金)
신언(申彦)
시재(施財)
60 판선(辦善)
61
정조(正朝)
62 함길(咸吉) 천장(天莊) 원장(元莊)
조연(助緣)
63 ▨▨ ▨▨ ▨▨ 혜주(惠珠) 을시(乙時)
[출전 :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高麗篇4】(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