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천자(天子)가 만국(萬國)에게서 조회를 받고 백령(百靈)
2을 지배하는 까닭은 해외(海外)
3를 맑게 해서 천유(天維)
4를 일으키고 환중(寰中)
5에 자리를 잡아서 지락(地絡)
6을 넓힘으로써, 칠덕(七德)
7을 드날려 먼 오랑캐의 땅을 어거하고 오병(五兵)
8을 빛내 변방을 고요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비록 질(質)과 문(文)
9이 궤(軌)를 달리하고, 걷는 것과 달리는 것이 길을 달리한다 해도 읍양(揖讓)
10의 전쟁
11 에 대해서와, 수종(受終)
12의 혁명(革命)
13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전쟁과 혁명은) 모두 헛되이 뛰어난 무용(武勇)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요, 훌륭한 병사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이것으로 흉수(汹水)
14에서 재앙을 당기다가 구영(九嬰)
15이 마침내 주륙되고, 동정호(洞庭湖)
16에서 역모를 꾀하다가 삼묘(三苗)
17가 이미 주륙되었음을 알겠다. 이에 천년을 본보기로 삼고 천착하며, 만고(萬古)를 생각하니 출세해서
18 한나라를 대신하고, 사마(司馬)
19 벼슬을 맡아 조정을 계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은 착문(鑿門 : 문 뚫는 것)을 중히 여기고 예(禮)는 추곡(推轂)
20을 높이 여기기도 하니 마복파(馬伏波)
21는 교지(交阯(趾))
22에서 동(銅)을 주조하고, 두거기(竇車騎)
23는 연연(燕然)
24에서 돌에 (공을) 새겼으나 끝내 제해(鯷海)
25의 분경(奔鯨)을
26 뒤집어엎거나 낭산(狼山)
27의 봉시(封豕)
28를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하물며 산의 나무가 다 닳아 없어지고 소리지르던 사슴이 고요해지며 단정(丹鼎)
29도 전해지지 않고 방서(方書)
30도 기록되지 않음에랴! 준동하는 이 오랑캐들이
31 도주(島洲 : 섬)에서 목숨을 훔치며, 요해처
32에 있는 구이(九夷)는 만리에 뚝 떨어져 있어서 이 지세가 험함을 믿고 감히 천륜(天倫)을 어지럽혀 동쪽으로는 가까운 이웃을 쳐서 가까이 중국의 (밝은) 조칙(詔勅)을 어기며, 북쪽으로는 역수(逆豎)
33와 연계되어 멀리 효성(梟聲)에 응한다. 하물며 밖으로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 요망한 계집을 믿어 오직 충성되고 어진 사람한테만 형벌이 미치며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이 먼저 총애와 신임을 받아 표매(標梅
34)에 원망을 품고 저축(杼軸)
35에 슬픔을 머금는다.
우리 황제께서는 두 가지 것을(善을) 체득해서 높은 자리에 있으시고
36 세 가지 일에 통달하신 것이
37 매우 뛰어나시며, 성현(聖賢)의 용모
38는 경사를 만들고 귀인(貴人)의 상(相
39)은 빛을 드날리셨다. 오서(五瑞)
40에 읍(揖)하여서 백신(百神)을 조회하고, 만물을 신묘하게 해서 육변(六辯)
41을 꾀하여 서북쪽에서는 하늘의 기둥을 바르게 하고 동남쪽에서는 지뉴(地紐)를 돌리셨다. 대저 용도(龍圖)
42를 진열하고 봉기(鳳紀)
43를 모으며 금경(金鏡)
44을 매달고 옥촉(玉燭)
45을 가지런히 하셨도다. 학철(涸轍)
46에서 궁지에 몰린 고기를 빼내주고, 기울어진 새집에서 위태로운 새알을 건져 주시면서도 이 유민을 불쌍히 여기고 저 흉포한 무리를 분히 여겨 친히 조민벌죄(弔民罰罪)
47하지 않고 먼저 장군들에게 명하셨다.
사지절(使持節) 신구(神丘)·우이(嵎夷)·마한(馬韓)·웅진(熊津) 등 십사도(十四道) 대총관(大摠管) 우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상주국(上柱國) 형국공(邢國公) 소정방(蘇定方)은 증성(曾城)에서 여러 번 구함(構陷)을 당하고 위수(委水)에서 긴 파란을 일으켰으며, 뛰어난 계획은 무장(武帳)
48에서 맞추었고 빼어난 기개는 문창성(文昌星)
49에 나타냈으니 위곽(衛霍)
50을 능가하면서도 따라잡지 않으며, 팽한(彭韓)
51을 굽어보면서도 높게 여긴다. 조운(趙雲)
52은 일신(一身)의 담력으로 용맹이 삼군(三軍)의 으뜸이 되었고 관우(關羽)
53는 만인(萬人)을 대적할 만한 능력으로 명성이 백대(百代)에 떨쳤다. 자기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죽을 뜻을 가지고 유적(流鏑)
54을 무릅쓰면서도 더욱 더 견고해졌고 목숨을 가벼이 하고 의(義)를 중히 여 기는 마음으로 앞장을 섰어도 (마음을) 빼앗기 어려웠다. 마음은 빙경(氷鏡)
55에 드러나 있어 귀신도 그 형상을 감출 수 없고, 바탕은 송균(松筠)에(절조 갖추기를) 힘써 바람과 서리도 그 색깔을 고칠 수 없었다. 사졸(士卒)을 길러 변방 오랑캐를 어루만짐에 이르러서는 사지(四知)
56를 삼가고 삼혹(三惑)
57을 제거하여, 빙천(氷泉)을 고요하게 해서 깨끗함을 드러내고 서리맞은 잣나무를 품고서 정절을 굳게 하니 말하지 않아도 『詩經』·『書經』에 부합하고 행하지 않아도 법도(法度)에 들어맞는다. 흰 구름을 거느리고서 상쾌함을 함께 하고, 푸른 소나무와 더불어서 고고함을 다투면서도 멀리 앞사람을 생각하여 모두 덕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이 있었다.
부대총관(副大摠管)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위장군(衛將軍) 상주국(上柱國) 하박공(下博公) 유백영(劉伯英)은 위로는 ▨▨▨ ▨▨풍운(風雲)으로 정치를 할 만한
58 재주를 가졌고 장상(將相)의 그릇을 품었다. 말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행동은 군대의 법칙이 되었으며, 말씀(詞)은 포백(布帛)을 따뜻하게 하고 향기는 연꽃과 난초의 향을 내었으며, 공적은 기상(旗常)에 드러나고 조리는 종률(鍾律
59)에 맞았다. 만년(晩年)의 절개보다 평생(平生)을 중히 여기고 짧은 시간보다 1척이나 되는 옥을 가벼히 여기며 매우 높은 공적도 항상 부족한 듯이 여겨 평책종책(平策縱策)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부대총관(副大摠管) 사지절(使持節) 농주제군사(隴州諸軍事) 농주자사(隴州刺史) 상주국(上柱國) 안이공(安夷公) 동보덕(董寶德)은 ▨는 드날릴 것에 뜻을 두고 걸출함은 뛰어나게 설 것을 도모했으며, 재주는 삼략(三略)
60에 통하고 계책은 후(後)▨를 움직였다. ▨▨진매(眞梅)하여 능히 위(魏)나라 군사로 하여금 목마름을 그치게 하고,
61 수고롭히지 않고도 솜옷을 채워 끝내 초(楚)나라 병졸로 하여금 추위를 잊게 했다.
부대총관(副大摠管) 좌령군장군(佐領軍將軍) 김인문(金仁問)은 기량(氣量)이 온화하고 아담하며, 기국(器局)과 식견(識見)이 침착하고 굳세어서 소인배의 자잘한 행위는 없고 군자의 고매한 풍모만 있었으며, 그의 무(武)는 싸우지 않고도 드러났으며 문(文) 또한 부드럽고 원대했다.
행군장사(行軍長史) 중서사인(中書舍人) 양행의(梁行儀)는 구름같은 머리꾸미개로 빼어남을 드러내고 해거울로 빛을 드날리며, 풍모는 진신(搢紳)
62보다 뛰어나고 도(道)는 아속(雅俗)을 빛내어 거울은 허곽(許郭)
63보다 맑고 덕망은 순배(荀裴)
64보다 중하였다. 분별 잘하는 것(辯箭)은 파도를 튀어 오르게 하여 배움의 바다에서
65 구류(九流)
66를 잡아당기고, 문장의 조리는 빼어남을 발하여 글 잘하는 사람에서 칠택(七澤)
67을 가리웠다. ▨태부(太傅)
68의 심오한 계책으로도 그의 말 고삐 받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두진남(杜鎭南)의 원대한 계략으로도 그의 수레바퀴를 붙들 수 없었도다. 잠시 봉지(鳳池)
69에 있으면서(중서성(中書省)에 있으면서) (이번 원정을 도와) 경학(鯨壑)을 깨끗하게 하였다.
형국공(邢國公)은 비책(秘策)을 움직이고 용감하고 굳세게 행동하여, 음우(陰羽)
70는 언월(偃月)
71의 계획을 열고 양문(陽文)은 샛별의 기운을 머금었다. 용도(龍圖)
72와 표검(豹鈐)은 반드시 정원(情源)에 드러내고 현녀(玄女)
73와 황공(黃公)
74은 신용(神用)에 모두 모였다. 하물며 하늘 끝까지 개미처럼 모여들고 땅을 삥 둘러 벌떼처럼 날아드는 것이 단호(短狐)
75가 모래를 머금은 것과 유사하고 장사(長蛇)
76가 안개를 토해내는 것과 비슷하여 영(營)을 서로 합치면 시랑(豺狼)
77이 길에 꽉 차고 진(陳)을 맺으면 효경(梟獍)
78이 산에 꽉 참에랴! 이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이 궁벽지고 험한 곳을 지키고서는 매달린 줄이 장차 끊어져서 대단히 무겁게
79 떨어지고, 쌓아올린 바둑돌이
80 먼저 위태로와 구정(九鼎)
81으로 누르게 될 줄은 알지 못한다. 이때 가을 풀이 시들어 가을산이
82 맑아지고 서늘한 바람이 일어 추운 기운이 심해지며, 빠른 걸음과 재빨리 지나가는 번개가 다투어 날고 첩고(疊鼓)
83와 분뢰(奔雷)가 다투어 친다. 풍(豊)·융(隆)에게 명하여 맨 뒤에 서게 하고 열결(列缺)
84에게 앞장서게 하며, 간사한 기운과 요망한 기운은 칼과 창으로 쓸어버리고 높은 담과 가파른 성가퀴는 충붕(衝棚)
85으로 부숴버린다.
좌장군(左將軍) 총관(摠管) 우둔위랑장(右屯衛郞將) 상주국(上柱國) 축아사(祝阿師)와 우일군총관(右一軍摠管) 사지절(使持節) 치주자사(淄州刺史) 상주국(上柱國) 우원사(于元嗣)는 지역은 관하(關河)를
86 차지하고 있고 재주는 문무(文武)를 아울렀으며 산서(山西)
87의 장엄한 기운을 끼고 기북(冀北)
88의 뜬 구름을 타고서 호흡을 하면 강과 바다가 파도를 멈추고 소리내어 꾸짖으면 바람과 천둥이 소리를 끊는다.
우이도부총관(嵎夷道副摠管) 우무후(右武候) 중랑장(中郞將) 상주국(上柱國) 조계숙(曺繼叔)은 오랫동안 정치에 참여하여 일찌기 어렵고 험한 것을 맛본 것이 염파(廉頗)
89의 강반(强飯)
90과 다르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늙은 신하와 같다.
행군장사(行軍長史) 기주사마(岐州司馬) 두상(杜爽)은 바탕은 아름다운 봉우리를 빛내고 향기는 계수나무밭에 흐른다. 바람을 따르고 번개를 밟아 서해(西海)에서 뛰어난 말을 달리며, 구름을 밀치고 물을 쳐 남해(南海)에서 굳센 깃촉을 잡으니 기족(驥足)
91이 이미 펴져서 봉지(鳳池 : 중서성 재상)를 가히 빼앗을 만하다.
우일군총관(右一軍摠管) 선위장군(宣威將軍) 행좌효위랑장(行左驍衛郞將) 상주국(上柱國) 유인원(劉仁願)은 효성을 바탕삼아 충성을 하고 집에서 비롯해서 나라를 이루어 일찌기 주공(周孔)
92의 가르침을 듣고, 나중에는 손오(孫吳)
93의 책을 익혔으며 이미 영용(英勇)한 재주를 띠고 아울러 문리(文吏)의 도(道)를 겸하였다.
형국공(邢國公)은 성지(聖旨)를 받들어 따르고 반조(斑條)를 위임받아 금(金)이 조와 같이 많아도 엿보지 않고 말이 양과 같이 순해도 조용하지 않게 하고자 했다.
우무위중랑장(右武衛中郞將) 김양도(金良圖), 좌일군총관(左一軍摠管) 사지절(使持節) 기주자사(沂州刺史) 상주국(上柱國) 마연경(馬延卿)은 모두 굳은 마음을 품고 각기 맹위를 떨치고자
94 힘써 삼하(三河)
95의 굳센 군사를 끼고 육군(六郡)의 지체있는 집안을 거느렸다.
형국공(邢國公)은 위로 뛰어난 계략을 받들고 아래로 절도(節度)를 오로지 하여 혹은 중권(中權)으로 군대를 함락시키기도 하고 혹은 후경(後勁)으로 선봉이 되게 해서
96 하늘에서 솟아나고 땅으로 꺼지는 기이함으로 천번 만번 변화하며, 멀리까지 이르고 깊은 데까지 끌어당기는 기묘함으로 번개같이 일어나고 바람처럼 가서 성기(星紀)가 미처 옮겨지기도 전에 훌륭한 명성이 길에 가득 찼다. 형국공(邢國公)은 인(仁)은 전선(轉扇)과 같고 은혜는 투료(投醪)
97보다 심하여 명을 거스르는 자는 추상(秋霜)과 같은 위엄으로 숙청하고, 귀순하는 자는 춘로(春露)와 같은 은택으로 적셔 주었다. 한 번 군대를 일으켜 구종(九種)
98을 평정하고 두 번 승전해서 삼한(三韓)을 평정하여 유홍(劉弘)
99의 간단한 글을 내리니 천성이 덕을 우러르고 노련(魯連)
100의 비전(飛箭)을 쏘니 만리(萬里)가 은혜를 머금었다.
그 왕(王)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융(隆) 이외 왕자(王子) (餘)효(孝)
101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102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거(牛車)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司勳)
103에 올리고 이에 청묘(淸廟)
104에 드렸다. 인하여 이 사나운 풍습을 바꾸어서 현묘한 꾀에 젖게끔 하였으니 면류관을 벗고 휘장을 걷음에는 먼저 충성되고 정성된 사람을 택하고, 생선을 삶고 비단을 만듦에는 반드시 현량한 사람을 선택해야 거의 부부(剖符)
105로 하여금 공적이 공황(龔黃)
106보다 뛰어나고 명현(鳴絃)으로 하여금 이름이 탁로(卓魯)보다
107 높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5도독(都督) 37주(州) 250현(縣)을 두고 호(戶) 24만
108, 口 620만을 각각 편호(編戶)로 정리하여 모두 오랑캐의 풍속을 바꾸게 했다. 대저 동관(東觀)
109에 기록하고 남궁(南宮)에
110 기록하는 것은 그 선행을 드러내기 위함이요, 이정(彛鼎)
111에 새기고 경종(景鍾)
112에 새기는 것은 그 공(功)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능주장사(陵州長史) 판병조(判兵曹) 하수량 (賀遂亮)이 외람되이 용렬한 재주를 가지고 잘못 문한(文翰)을 맡아 배움은 조두(俎豆)
113를 가벼이 여기고 기운은 풍운(風雲)
114을 중히 여기면서도 직책은 장군(將軍)이라 불리워 염파(廉頗)의 열(列)에 들기를 원하고 벼슬은 박사(博士)라 칭해져 가의(賈誼)
115와 함께 우열을 다투기를 바란다. 쇠약한 용모라 하지 않고 오히려 장엄한 절개를 품어 해외(海外)에서 무기를 들고 근소한 것이라도
116 본받기를 바라고, 여섯 번 적정(敵庭)에 실려가고 아홉번 달아나다가 잡혀 궁벽해서 돌아와 설 때도 뜻은 거중(居中)
117하고자 한다. 이에 남은 할 말을 안하고 삼가 직필을 휘둘러 다만 성사된 일만을 쓰고 부화(浮華)
118는 취하지 않아 저 바다가 변하여 뽕밭이 되어도 천지가 영구한 것과 같이 하고 모래톱이 우거진 섬으로 바뀌어도 일월(日月)과 더불어 길이 매달리게 하고자 한다. 그 명(銘)에 이르기를
아득히 먼 옛날, 아득한 그 처음에 인륜(人倫)은 아직 혼돈하여 어두웠으나
119 천지 자연의 이치는 비롯되었다.
120 겨울에 보금자리를 지었다가 여름에는 방랑하며 껍질을 숨기고 순거(鶉居)
121하여 (집을) 맺기도 하고 새기기도 하며, 혹은 사냥, 혹은 고기잡이도 하니 청정한 근원이 이미 지나갔고 큰 도(道)가 빠져 없어졌다. 이에 삼황오제(三皇五帝)
122에 미쳐 대대로 한 주인이 아니어서 선양(禪讓)을 한 것은 당요(唐堯), 우순(虞舜)이요.
123 혁명(革命)을 한 것은 탕왕(湯王)·무왕(武王)
124이니 위로는 칠정(七政)
125을 가지런히 하고 아래로는 구주(九州)를 고르게 하며, 여러 번 무기를 소란케 하여 이에 천하를
126 맑게 하였으되 아직 서액(西掖)
127을 적시지도 못했으니 어찌 동호(東戶)에 미치겠는가?
아! 우리 황제께서는 도(道)가 궁창(穹蒼)
128에 화합하고 영예(榮譽)는 천고에 거울이 되어 뭇 왕을 통합하니 멀고 먼 변방과 아득히 먼 대황(大荒)
129이 모두 정삭(正朔)
130을 품부 받고 아울러 봉강(封疆)
131에 참예하였다. 준동하는 이 구종(九種)이 홀로 삼광(三光)
132을 막아놓고서 은혜를 베푼 나라에 배반을 하고
133 수향(水鄕)을 침범하니 하늘이 비장(飛將)을 내리고 표범이 읍양(揖讓)을 성하게 하며 활은 달그림자를 머금고 칼은 별빛을 움직인다. 용맹스런 군대
134 백만이 번개처럼 일어나고 바람같이 드날려 앞에서는 반목(蟠木)
135을 베다가도, 물러나서는 부상(扶桑)
136을 베어버리며 얼음은 여름해에 녹여버리고 잎은 가을서리에 부서지게 한다. 굳센
137 오영(五營)과 밝고 밝은 삼령(三令)
138으로, 우러러서는 묘략(廟略)
139을 펴고 굽어서는 군정(軍政)을 가지런히 하여 바람은 풀잎이 시들 때보다 엄하고 태양은 강물이 맑을 때보다 차도다. 서리같이 매서운 창은 밤에 움직이고 구름그린 깃발은 새벽에 빛나 재잘거리며 전군(前軍)을 찌르고 큰소리치며 후비(後備)의 정병(精兵)을 잡아당기니 크고 교활한 놈이 머리를 바치고, 체포되어 주살될 놈이 목숨을 청한다. 위엄과 은혜가 ▨▨하여 변방 모퉁이가 이미 평정되고 아름다운 나무가 베어지지 않아 임금의 은혜를 읊고
140 화대(花臺)가 달을 바라보니 패전(貝殿)이 공중에 떠있고 그림을 새긴 종(鍾)이 밤에 울리니 맑고 맑은 깨끗함이 새벽에 통한다. 이 보찰(寶刹)을 깎아 특별한 공을 기록하니 천관(天關)
141을 막아서 영원히 견고하고 지축(地軸)을 가로질러서 끝이 없기를 바란다.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