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慶州 壺杅塚 出土 靑銅 ‘廣開土大王’銘 壺杅)
- 시대
- 고구려
- 연대
- 415년(장수왕 3)
- 유형
- 금속기
- 재질
- 금속
- 크기
- 전체높이 19.4cm, 지름 24.0cm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 출토지
-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140호분(호우총)
- 서체
- 예서(隸書)
- 찬자/각자/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慶州 壺杅塚 出土 靑銅 ‘廣開土大王’銘 壺杅)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개관
경북 경주시 소재 신라 고분 노서동 140호에서 출토된 청동제 호우(壺杅)의 바깥쪽 밑바닥에 주출(鑄出)되어 있는 명문(銘文)이다. 이 호우는 뚜껑이 있는 둥근 모양의 그릇이다. 호우가 출토된 고분은 적석목곽분으로, 1946년 발굴 당시 이미 파괴된 상태였는데, 원래는 지름 16m, 높이 4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에는 각종 철기와 금동제품, 토기 및 방상씨가면(方相氏假面)으로 추측되는 목심칠면(木心漆面) 등이 포함되어 있다. 피장자는 중상급 귀족으로 추정된다. 호우는 고구려 415년(을묘년, 장수왕 3)에 만들어졌는데, 명문의 서체(書體)는 「광개토왕릉비」와 같다. 광개토왕을 장사지낸 일년 뒤에 왕릉에서 크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호우를 제조하였던 것 같다. 그 제사의식에 조공국의 사절로 참석하였던 신라 사신에게 호우가 주어져, 경주에 가져오게 되어졌다고 여겨진다.
판독문/해석문
전체 8개
| 해석문 | 노태돈 | ||
| 판독문 | 김재원 | ||
| 판독문 | 末松保和 | ||
| 판독문 | 김원룡 | ||
| 판독문 | 황수영 | ||
| 판독문 | 허흥식 | ||
| 판독문 | 이호영 | ||
| 판독문 | 노태돈 |
참고문헌
전체 14개 / 페이지 ( 1 / 2 )
|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 논문 | 1999 | 「신라 서봉총과 호우총의 절대년대고」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 논문 | 1981 | 田中俊明, 1981, 「高句麗の金石文 -硏究の現狀と主題-」『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
| 논문 | 1979 | 李昊榮, 1979, 「中原高句麗碑 題額의 新讀 -長壽王代의 年號 推論-」『史學志』13, 단국대 사학회 |
| 논문 | 1977 | 「신라호우총의 피장자는 누구인가」 |
| 단행본 | 1976 | 黃壽永, 1976, 『韓國金石遺文』, 一志社 ; 1994, 復刊 ; 1999, 『金石遺文 黃壽永全集4』, 혜안 |
| 논문 | 1973 | 金膺顯, 1973, 「高句麗書法考」『書通』1, 동방연서회 |
| 논문 | 1970 | 駒井和愛, 1970, 「隅田八幡藏畵象鏡考」『東方學』40 |
| 단행본 | 1968 | 『韓國金石文追補』, 中央大出版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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