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암사적비(晉州義巖事蹟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722년(경종 2)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높이 145.0cm, 너비 60.0cm, 두께 15.0cm
-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500-8
- 출토지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500-8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정식(鄭軾)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시도유형문화유산
- 연구정보
개관
진주의암사적비는 의암(義巖)에서 촉석루(矗石樓)로 올라가는 길목 옆 암반 위 비각에 세워져 있다. 비각 안에 보존되어 비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비의 내용은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어 7만의 군·관·민이 순절하자, 진주 남강의 의암에서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국한 논개(論介, ?~1593)의 사적을 기리고 있다. 논개에 관한 이야기는 임진왜란 이후 진주민들의 입으로 전해지다가 1620년(광해군 12)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수록되어 전해졌다. 이후 1722년(경종 2) 진주의 선비 명암(明庵) 정식(鄭軾, 1683~1746)이 『어우야담』의 기록을 바탕으로 비문에 내용을 담아 사적비를 세우고 1741년(영조 17)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남덕하(南德夏, 1688~1742)가 왕의 명을 받아 비각을 세우고‘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2000년 1월 3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진주시청 | ||
| 판독문 | 한국고전종합DB |
참고문헌
| 기타 | (web) 한국고전종합DB | |
| 단행본 | 2009 | (web)디지털양산문화대전 |
| 단행본 | 1901 | 『명암집(明庵集)』 |
- 담당부서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문의 : 042-860-9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