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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한글) 관북리유적
시대 삼국(백제)
성격 도성
시군구 충청남도 부여
유적설명(한글)

이 유적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사비도성의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사비도성은 도시 전체를 나성(羅城)으로 두르고 있어 고구려의 평양 장안성과 더불어 한반도 삼국시대의 특징적인 도성제(都城制)를 취하고 있다.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나성 내부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으로서 본 유적은 바로 그 남쪽 산록에 해당되는 핵심적인 지점이다. 조선시대에도 바로 이 지점에 관아가 자리하고 있어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본 유적 일대는 백제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는데, 1982년도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시대의 정연한 도로 흔적과 함께 관상지로 판단되는‘연지(蓮池)’가 발견되어 그러한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발굴성과와 함께 유적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2001년도에는 사적(제428호)으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지속적으로 조사와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2005년도 조사에서 마침내 그간의 그러한 추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백제시대의 대형건물터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까지 삼국시대의 왕궁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어 비교자료가 거의 없으나, 당시의 일반적인 건물터에 비해 그 규모는 물론 고도의 기획성을 갖추고 있어 왕궁을 구성하는 다수의 전각(殿閣)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할 것으로 판단된다.
같은 해 이 건물지와 거의 동일한 형태와 규모의 건물터가 전북 익산 왕궁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익산 왕궁유적은 그 성격을 둘러싸고 학계의 의견이 완전히 통일되어 있지는 않으나 사비시기의 왕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북리유적과 익산 왕궁유적에서는‘수부(首府)’라는 명문이 찍힌 기와편도 같이 발견되어 두 유적 모두 왕궁과 관련된 시설이었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관북리유적의 건립 시기는 대략 7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되는데, 건물터의 구체적인 특징을 보면 초석 대신 이른바‘상’이라 부르는 형태로 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네모지게 땅을 파내고 그 속을 이른바 판축(版築) 방식으로 흙을 켜켜로 다진 다음 그 위에 초석을 두는 기초방식이다.
이 유적은 그간 추정의 범위에만 머물러야 했던 백제시대 왕궁의 모습에 더욱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백제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삼국시대 왕궁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징 사비백제의 왕궁지
주요유적 왕궁지
유적요약설명 관북리 유적은 백제의 왕궁지로 추정되었는데 1982년 도로 흔적과 연지가 발견되고 2005년에 대형 건물터가 발굴되면서 추정만 되었던 백제시대 왕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고 있다.
조사기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사전명 2005 한국고고학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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