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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명(한글) | 정림사지 |
|---|---|
| 시대 | 삼국(백제) |
| 성격 | 사지 |
| 시군구 | 충청남도 부여 |
| 유적설명(한글) |
정림사(定林寺)는 그 입지로 보아 백제 사비도성 내의 가장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축조 시기는 사비천도 무렵인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림사”라는 사명의 유래나 출토된 소조상(塑造像)이 나 불상의 양식적 특징에서 당시 중국 남조 양(梁)과의 밀접한 관련성이 상정되는데, 그러한 점은 사찰 건립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는 공장(工匠)·화사(畵師)·경의(經義) 등을 양나라에 구하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의 기록으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 남조의 사찰 유적이 조사된 바 없는 현재로서는 정림사지는 당시의 가람의 배치를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로서 매우 중요하다. 정림사지는 일찍이 1942년 최초 조사시 「大平八年戊 辰定林寺大藏當草」銘 기와(1028년)가 출토되어 가람배치의 양상과 함께 절이름이 정림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1979년 창건기의 가람배치를 확인하기 위한 전면적인 조사가 있었다. 이러한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정림사지의 정비·복원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조사자 사이에 가람배치안이 다르고 유구 간 선후관계도 불명확하여 재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우선 강당지 및 그 주변, 동회랑지 일대를 중심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백제시대 정림사 및 고려 시대 정림사 가람배치와 그 변천과정 일부를 규명하게 되었다. 백제시대 정림사는 강당 좌우에 폭이 넓은 독립된 건물지(부속건물지)가 회랑까지 이어지도록 남북방향으로 길게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능산리사지(567년)나 왕흥사지(577년)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강당 좌우에 독립된 건물이 존재하는 것이 백제 사찰 가람배치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으로 판단된다. (집필 : 정자영, 감수 : 박순발) |
| 특징 | 5세기 전반 동아시아 最古 가람배치를 확인하다 |
| 주요유적 | 사지 |
| 유적요약설명 | 백제시대 정림사는 강당 좌우에 폭이 넓은 돌립된 건물지가 회랑까지 이어지도록 남북방향으로 길게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
| 조사기관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
| 집필자 | 정자영 |
| 사전명 | 2008 한국고고학저널 |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