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흥사지 사리기(王興寺址 舍利器)
- 출토유적명
- 충청남도 부여군 왕흥사지유적
- 출토유구명
- 목탑지 심초석내 사리공
- 지정종목
- 국보
- 지정일
- 2019-06-26
- 시대 / 재질
- 백제시대 / 금속류
- 유물구분
- 발굴
- 크기
- 청동사리함: 높이 10.3cm, 지름 7.9cm, 두께 0.1 내외 은제 사리호: 높이 6.8cm, 동부 최대경 4.4cm, 두께 0.1내외 금제 사리병: 높이 4.6cm. 동부최대경 1.5cm, 두께 0.1cm 내
- 출토수량
- 청동사리함: 1, 은제 사리호: 1, 금제 사리병: 1
- 유물번호
- 2007-0201-0000001, 2007-0201-0000002, 2007-0201-0000003
- 소장처
-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유물설명
금제사리병, 은제사리호, 청동사리합의 3중구조이다. 사리내병인 금제사리병은 순금으로 제작하였다. 기형은 몸체가 긴 병형이고 뚜껑이 있다. 뚜껑은 상면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가장자리에 1줄의 음각선이 있다. 드림턱은 깊고 드림부는 직립한다. 중앙에 보주형 손잡이를 별도 부착하였고 손잡이 주변에 6엽의 꽃잎을 새겼다. 병의 구연부는 경부에서 꺾여 곧게 직립하고, 동체 하부는 볼록하며 경부로 갈수록 좁아진다. 동체 상·하부를 별도 제작하여 접합하고 굽을 부착하였다. 내면에 접합흔이 확인된다. 사리외병인 은제사리호는 순은으로 제작되었다. 기형은 호형으로 뚜껑이 있다. 호의 구연은 직립하고 동체는 부푼 구형이며, 굽은 외반한다. 문양은 없다. 뚜껑은 상면이 약한 곡선을 이루며 드림턱이 있다. 뚜껑 상면에 보주형 손잡이를 끼워넣고 주변에 8엽의 연꽃잎을 새겨 전체적으로 입체화된 연꽃을 구현하였다. 몸체는 경부, 동체, 저부를 별도로 제작하여 접합하였다. 내부에는 사리내병 안치를 위한 둥근 좌대가 설치되었다. 사리기 외합인 청동사리합은 원통형으로 반구형의 뚜껑이 덮여 있다. 뚜껑 상면과 드림부 상·하단에 2조의 음각선이 있다. 뚜껑 중앙에 4엽의 꽃잎이 장식된 봉오리형 손잡이가 있다. 손잡이는 끼워 부착하였고 손잡이 주변으로 연화문 장식을 부착했던 부식흔이 있다. 동체는 수직으로 직립하고 외면 상·하단에 2줄의 음각선이 돌아간다. 음각선 안으로 5자 6행 29자의 음각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丁酉年(577) 2월 15일 백제왕 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또는 사찰)을 세우고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것이다.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리기이다. 부여 왕흥사지라는 출토지가 분명하고 청동제 사리합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577년(위덕왕24)에 제작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절대가 확실할 뿐 아니라 『삼국사기』 등의 문헌기록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이다.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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