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왕궁리유적(益山王宮里遺蹟)
설명 사적.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위치하며, 그 명칭은 ‘모질메토성’, ‘왕궁평성(王宮坪城)’ 혹은 ‘모지밀산성(慕枳密山城)’, ‘왕궁리성지’, ‘왕검이’, ‘왕금성’등으로도 불린다. 고대 왕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학계는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곳이다.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백제 말기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이곳이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이 『삼국사기(三國史記)』등의 문헌을 통해 널리 알려져 왔다. 이 일대가 마한의 기준(箕準) 천도설, 백제 무왕의 금마천도설 혹은 별도설, 통일신라시대 안승의 보덕국(報德國) 도읍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 등 고대의 왕궁과 관련된 여러 학설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 있다. 발굴조사는 1989년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연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현재 20년간 지속적인 조사결과, 석축 성벽의 규모가 남북 약 490m, 동서 약 240m로 밝혀졌으며, 아울러 대규모의 궁성 및 사찰 관련시설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백제의 성벽, 석축, 대형 화장실, 정원, 와적기단 건물지, 공방폐기지 등 다양한 궁성 관련 유구와 왕궁리 5층석탑(국보)과 관련한 금당지, 강당지 등 통일신라시대 사찰 관련 유구가 확인되었고, 왕궁사(王宮寺)·대관관사(大官官寺)명 명문와, 수부(首府)명 인장와, 연화문 와당, 각종 도가니, 금제영락, 유리구슬, 뒤처리용 나무막대, 각종 토기 및 중국제 청자편 등 총 3,000여 점의 중요유물이 출토되었다. 최근조사에서는 동서 석축 3·4, 정면 7칸×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 와적기단 건물지를 비롯하여 다수의 궁성 내부 시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로써 백제 궁성의 존재양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었고, 궁성 내부의 공간 활용 및 운영에 대한 연구 자료가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다. 이 성벽은 궁궐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동서 길이: 남북 길이가 1: 2인 약간 틀어진 직사각형을 하고 있다. 규모는 동벽 492.8m, 서벽 490.3m, 남벽 234.06m, 북벽 241.39m이다. 일반적으로 체성부의 폭은 3∼3.6m이고 내·외부에 보도용 혹은 낙수물 처리용의 폭 0.95∼1.2m의 부석시설, 성벽 경계 및 배수처리용의 폭 1.2∼2.5m의 석열시설이 확인되었다. 부속시설로는 서남·동남·북동 모서리 부분에 수구(水口), 서벽에 길이 50m의 대형 동서석축배수로, 문지 4개소(남벽 3개소, 서벽 1개소)가 확인되었다. 성벽은 삼국시대 백제 무왕대에 초축된 후에 통일신라시대에 부분적으로 보수 혹은 교체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벽의 기초부는 지형적인 입지조건과 물의 영향 정도에 따라 다르게 축조되어 있다. 즉 지반이 약하거나 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지점의 성벽 기초부는 생토층을 다듬어서 고른 후 회색 점토층을 얇게 깔고 막돌을 사용하여 높이 80∼120㎝, 5∼7단 정도 석축하여 기초를 단단하게 조성하였다. 반면에 성벽 내벽에서 외벽으로 비교적 급경사면을 이루고 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지점의 기초부는‘L’자 형태로 절개를 하거나, 외벽면에 바로 성석을 올리고 마사토와 적갈색 혹은 회녹색 점토로 채워 조성하였다. 성벽은 크게 체성부 및 지하 기초시설, 부석시설, 석열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체성부는 내외벽면을 잘 다듬은 방형 혹은 장방형의 화강암 석재를 종평적하거나, 성인머리 크기의 막돌로 밖으로 노출되는 부분을 수직으로 맞추어 가면서 쌓았고, 뒤채움은 잡석과 토사로 단단하게 채워 넣는 토석혼축 구조이다. 구간별로 체성부의 제1∼2단을 잘 다듬은 가공석 1매, 혹은 2매를 혼용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성벽의 내측 석축열에서 안쪽으로 약 2m 떨어진 지점에 기와와 잡석이 남북방향으로 정연하게 집적되어 있는 지점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성벽의 상부 형태는 기와로 지붕을 얹은 형태로 추정된다. 체성부의 내·외측면에 너비 0.9∼1.2m인 부석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부석시설은 화강암·점판제 판석을 세우거나 종평적하여 마감시설을 하고, 이와 체성부의 기초석 사이를 판석 혹은 격지석으로 채워 만들었다. 부석시설은 평평하거나(서,남벽), 약간 경사진(동벽) 면에 조성되었고 이 상면에서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었던 것으로 볼 때 체성부의 상부구조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을 처리하는 시설이거나 통행할 수 있는 보도시설로 추정된다. 부석시설에서 완만한 경사면에 120∼250㎝ 떨어진 지점에서 성벽 방향과 일치하게 점판암 혹은 화강암제 할석을 바깥쪽으로 면을 맞춰 세우거나 종평적하여 조성하였다. 다만 동벽 외측 석열시설의 외부는 하천의 범람에 따른 피해에 대비하기 위하여 바깥 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져 있었고, 후대 석열시설이 파괴되면서 이 경사면에 점토와 잡석으로 단단하게 성토하여 제방과 같은 기능을 하는 시설이 만들어져 있었다. 남벽에서 3개의 문지는 60.1m 떨어져 있고, 문이 설치되는 부분과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이 연결되는 계단시설의 규모는 동서 길이 11.50∼11.55m, 남북 너비 6.84m이다. 따라서 문지의 전체 규모는 동서 길이 11.5∼11.55m, 남북 너비 10.99m로 추정된다. 문지의 상부에서 확인된 기단의 규모는 동서길이 11.5m, 남북 잔존 너비 1.5m이다. 기단 내부에서 주칸거리가 3.3m인 정면 3칸의 적심흔적이 확인되었다. 서벽 문지는 서벽의 남측에서 1/3 지점에 위치하고, 잔존 규모는 남북 길이 8.5m, 동서 너비 5m이다. 기단은 체성부처럼 자연면을 ‘L’자 형태로 굴광하지 않은 부분을 약 70㎝ 깊이로 파고서 밝은 적갈색 사질점토로 단단하게 판축하여 조성하였다. 기단 및 초석의 존재양상을 통하여 볼 때, 건물의 규모는 정면(남북길이) 3×측면 2칸(동서폭)으로 추정된다. 서벽 암거는 성벽의 코너에 형성된 다른 3부분의 암거와는 달리 490m의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서벽의 2/3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암거는 서벽의 체성부에 직교하게 양쪽에 할석을 쌓고, 바닥면은 생토면을 굴광하고 넓은 판석을 빈틈없이 깐 후에 중앙에 한 줄로 커다란 자연석을 쌓아 수로를 양분하고 위에 덮개석을 얹어 마감하였다. 암거의 동서길이는 680㎝이며, 폭은 260㎝이다. 특히 서벽 안쪽으로 480㎝ 떨어져 있는 지점에서 양끝이 나팔상으로 벌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나팔상의 암거의 끝부분에 길이 40m, 폭 150㎝의 동서 석축배수로가 덧붙여져 있다.(전용호)
참고문헌 왕궁리유적 발굴중간보고Ⅲ(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1), 익산 왕궁리발굴조사 중간보고Ⅳ(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2), 왕궁리 발굴조사중간보고Ⅴ(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6)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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