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부여나성(扶餘羅城) |
|---|---|
| 설명 | 사적.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석목리, 능산리, 가탑리, 염창리 일원에 걸쳐 분포한다. 나성은 사비도성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사비도성 함락 당시의 사정을 전하고 있는『구당서(舊唐書)』소정방전(蘇定方傳)에는 나성이 사비도성의 외곽(外郭)으로 인식되고 있음이 잘 나타난다. 백제 멸망 이후에도 나성의 존재는 역대 지지류에 기록이 전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부여현(扶餘縣) 고적조(古跡條)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반월성은 석축으로 길이는 13,006척(6,086m)인데 곧 옛 백제의 도성이다. 부소산을 안고 축조되어 그 양끝은 백마강에 이른다. 형상이 반월과 같으므로 그렇게 부른다(半月城石築. 周一萬三千六尺. 卽古百濟都城也. 抱扶蘇山而築兩頭抵白馬江. 形如半月故名).”그리고『대동지지(大東地志)』부여(扶餘) 성지조(城池條)에도 거의 같은 내용이지만, 성벽이 토축이라 한 점이 다르다. 이는 당초의 석축 성벽이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허물어져 토축처럼 인식되었던 것에 기인된 것이다. 그 후 1915년 부여를 방문한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의 관찰기록은 부여나성의 평면 형태 및 성격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성은 서에서 남에 걸쳐 만류하는 금강을 자연 참호(塹濠)로 하고, 남에서 동에 대해서는 기복이 있는 산을 천혜의 장벽으로 하였는데, 산봉우리를 이어서 토축의 성벽을 쌓아 금강의 흐름과 서로 응하게 하였다.(중략) 이 성벽은 원의 한쪽과 같이 반월상을 하고 있기에 이를 반월성이라 하였다.(중략) 원래 조선식의 성은 모두 산성으로서, 시가지까지 성벽으로 두르는 것은 없었다. 고구려, 신라, 임나도 모두 그러하다. 백제에도 공주의 산성이 그러하였으나 여기 부여의 도성은 부소산성을 둔 것 외에도 금강과 외곽의 성벽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처럼 성벽으로서 시가까지 둘러싼 것은 필경 중국의 성제를 모방한 것으로서, 조선식의 산성과 중국의 시가지 포위식과 절충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중략) 결국 산하지형을 이용하여 견고한 요해(要害)로 만드는 진보한 성제(城制)를 만들어 낸 것은 조선에서는 여기 반월성이 처음으로서, 그 후 고구려의 장안성(아마도 지금의 평양)도 이것과 매우 유사한 성곽을 만들었다. 금강은 지금도 하천 폭이 넓어 걸어 건너기가 불가능하나 옛날은 더욱이 넓고 한층 깊었음에 틀림없다.”1959년 부여를 견학한 오카자키 게이[岡崎敬]의 여행기에 수록된 도면에도 부소산성에서 북으로 연결되는 북나성과 남으로 염창리에 이어지는 동나성이 표시되어 있어 조선시대 이래 인식되어 온 평면형과 같이 반월형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나성 평면구조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 계기는 1978년도에 백제고도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작성된 문건인데, 그 내용은 성주탁(成周鐸)의 논문에 소개되어 있다. 즉, 부소산성 서쪽-유스호스텔-관북리-구교리-유수지-동남리-군수리-성말리까지 이어지는 서나성(西羅城)의 존재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홍재선(洪再善)에 의해 남나성(南羅城)도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인식은 1999∼2000년에 걸친 국도 4호선 공사에 수반된 이른바 서나성 통과 지점에 대한 발굴조사 및 2000년 부여군의 의뢰에 의해 실시된 부여나성 정밀지표조사 결과가 공표되기까지 국내외 연구자들에 의해 널리받아 들여졌다. 서나성 통과 추정 지점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나성의 흔적은 전혀 없었으며, 백마강의 자연제방에 해당되는 지점에는 조선시대 이래의 제방이 축조되어있을 뿐이었다. 이와 함께 구드레 둔치 지점에 대한 시굴조사에서도 현재의 제방 바깥지점에서 백제시대의 기와 건물지가 드러나고 강변쪽으로는 당시의 경작지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되었을 뿐 나성의 존재는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양상은 전술한 군수리 지점의 강변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 지표하 3∼5m 지점에서 토기편이 포함된 백제 당시의 강변 퇴적층이 확인되나 나성과 같은 성벽은 물론이고 목책 등의 방어시설과 관련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부여나성의 평면구조 및 규모는 부소산성-청산성 구 간의 북나성 0.9㎞, 청산성-석목리-염창리에 이르는 구간의 동나성 5.4㎞ 등 총 6.3㎞로 밝혀졌는데, 이는『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기록과도 일치된다. 나성의 성문 및 시설물은 북나성의 청산성 북문 1개소, 동나성의 석목리 지점에 옹성구조를 가진 성문 1개소, 능산리 고분군 뒷산 정상부를 거쳐 청마산성으로 통하는 지점의 문지 1개소, 능산리 고분군 서편 현 4번 국도와 나성 교차 지점의 문지 1개소, 왕포천과 나성 교차 지점의 수문 1개소 및 해자, 염창리와 중정리를 연결하는 지점의 문지 1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나성의 축조 재료 및 기법에 대해서는 토축으로 성벽을 만든 후 그 외벽에 이른바 ‘호성석축(護城石築)’을 덧댄 것으로 이해한 바 있다. 그러나 2000년에 실시된 동나성 염창리 지점에 대한 성벽절개 조사를 통해 성벽의 주체는 토축부분이 아니라 외부의 석축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지금까지 나성 성벽절개조사 지점은 모두 석목리지점 2개소, 능산리 구릉 1개소, 능산리 저습지 1개소, 염창리 산록 4개지점 등 모두 8개소에 달한다. 축조 기법은 축조 당시의 구지표면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 내측에서부터 성토에 의해 토축 내탁부를 먼저 만든 다음 그에 기대어 성 외측에 해당하는 곳에 석축 성벽을 쌓아 올린 다음 정상부를 성토피복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구지표면이 저습지에 해당되어 지반이 연약한 곳에는 지엽부설(枝葉敷設), 무리 말뚝 등 기반 보강 공법을 채택하였다. 완성된 성벽의 높이는 석축 외벽면을 기준으로 할 때 지상 약 3∼4m 가량이며, 경사도는 70∼75°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나성의 축조 시점은 사비도성 전반의 조성 시기와 맞물려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 동성왕 12년(490), 23년(501) 등에 보이는 사비 지역 전렵(田獵) 기사 및 사비도성 방어의 요충에 해당하는 가림성(加林城) 축조 사실로 보아 적어도 538년 천도 이전 웅진기에 이미 신수도 조성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나성과 더불어 사비도성의 핵심 시설 가운데 하나인 부소산성의 조성 시점이 동문지 출토 ‘대통(大通)명 인각와’에 의해 527∼528년 무렵으로 비정될 수 있는 점 역시 천도 이전에 나성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입장에 유리한 근거가 되고 있다. 한편, 나성이 무왕대(武王代) 7세기 초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본 견해도 있었으나 북나성 통과 지점의 청산성(靑山城)을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 무왕 6년(605)조에 축성기사가 보이는 ‘각산성(角山城)’으로 비정하는 불확실한 근거에 기반한 것이어서 성립되기 어렵다. 천도 이전에 나성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입장의 주요한 논거는 도성 방어에 필수 시설인 외곽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천도가 강행될 까닭이 없다는 정황적 근거와 함께, 나성 바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능산리 고분군의 입지에서 찾을 수 있다. 『수서(隋書)』의례지(儀禮志) 상장령(喪葬令)에서 잘 알 수 있듯 경역(京域)에는 무덤을 쓰지 않는 다는 당시 동아시아 공통 인식에 비추어 새로운 도성의 왕릉역을 설정할 시점에는 이미 경역의 한계인 나성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2002년도 동나성 염창리 성벽 절개조사 시 출토된 축성 성토층 내에 혼입된 삼족기는 정림사 대지 조성 정지토층 출토 삼족기와 함께 6세기 전반으로 비정 가능한 점 역시 나성 축조가 538년 천도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시사한다.(박순발) |
| 참고문헌 | 百濟の遺蹟(關野貞, 考古學雜誌第6卷第3號, 1915), 백제고도순례(강기경, 불교예술 83, 매일신문사, 1972), 백제사비성연구(홍재선, 동국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1), 백제사비도성연구(성주탁, 백제연구 13집, 1982), 백제사비나성Ⅰ·Ⅱ·Ⅲ(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2000·2002), 사비도성(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2003), 泗??羅城硏究の現段階(朴淳發, 溝??13號, 古代山城硏究會, 2007) |
| 구분 | 용어 |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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