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계첩
해제
≪기사계첩(耆社契帖)≫은 1719년 숙종(肅宗, 재위 1667~1674)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기로회(耆老會)의 행사 장면을 그리고, 왕의 시문(詩文)과 참석자의 초상화 및 시문을 합쳐 1720년에 완성한 첩이다. 본래 동일한 화첩이 총 12부가 제작되어 이 중 11부는 기로신 11명에게 한 부씩 나누어주었고 나머지 한 부는 기로소에 보관되었다. 현재는 본 개인소장본을 포함하여,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리움미술관 소장본 등 6첩이 전하고 있다. 본 화첩은 홍만조(洪萬朝, 1645~1725)의 가문인 풍산 홍씨 집안에서 삼백여 년간 보관해 온 것이다. 특히 이 서화첩을 보관해 온 용기가 일괄로 전해지고 있어 가치가 높다. 용기는 서화첩이 들어있는 내함(內函), 내함을 싼 호갑(護匣), 내함이 든 호갑을 넣는 외궤(外櫃)로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다른 화첩들과 달리 본 유물에만 ‘만퇴당장(晩退堂藏: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라는 글씨가 실려 있어 1720년 이 화첩이 하사된 이래 풍산 홍씨 가문에서 간직해왔음을 확인시켜 준다. 본 유물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화첩은 전체 54면으로 서문, 축시, 발문, 좌목, 기록화, 초상화, 시, 서화가 명단이 포함되어 있다. 그림으로는 5건의 행사 장면을 그린 화면 외에 10명 기신(耆臣)의 기로도상(耆老圖像)이 포함되어 있다. 11명의 기신 가운데 최규서(崔奎瑞, 1650~1735)의 초상화는 빠진 채 화첩의 23면부터 32면까지가 초상화로 꾸며져 있다. 23면에는 이유(李濡, 1645~1721), 24면에는 김창집(金昌集, 1648~1722), 25면에는 김우항(金宇杭, 1649~1723), 26면에는 황흠(黃欽, 1639~1730), 27면에는 강현(姜鋧, 1650~1733), 28면에는 홍만조(洪萬朝, 1645~1725), 29면에는 이선부(李善溥, 1646~1721), 30면에는 정호(鄭澔, 1648~1736), 31면에는 신임(申銋, 1639~1725), 32면에는 임방(任埅, 1640~1724)의 초상화가 장첩되어 있다. 각 초상화의 상단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표제가 전서(篆書)로 적혀 있어 해당 기신의 직위와 나이를 알 수 있다. 23면 이유: 영부사녹천이공칠십오세진 (領府事鹿川李公七十五歲眞) 24면 김창집: 영의정몽와김공칠십이세진 (領議政夢窩金公七十二歲眞) 25면 김우항: 행판부사갑봉김공칠십일세진 (行判府事甲峰金公七十一歲眞) 26면 황흠: 지사황공팔십일세진 (知事黃公八十一歲眞) 27면 강현: 지사백각강공칠십세진 (知事白閣姜公七十歲眞) 28면 홍만조: 행사직만퇴홍공칠십오세진 (行司直晩退洪公七十五歲眞) 29면 이선부: 행부사직육송이공칠십육세진 (行副司直六松李公七十六歲眞) 30면 정호: 판윤장암정공칠십이세진 (判尹丈巖鄭公七十二歲眞) 31면 신임: 우참찬죽리신공팔십일세진 (右參贊竹里申公八十一歲眞) 32면 임방: 지사수촌임공팔십세진 (知事水村任公八十歲眞) 각 신하들은 머리에 검정 사모(紗帽)를 썼으며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公服)인 단령(團領)을 입고 있다. 단령에 달린 흉배는 품계(品階)에 따라 단학과 쌍학을 달리했다. 허리에는 삽금대(鈒金帶)를 착용한 채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돌린 자세를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18세기 전반기 초상화에서 자주 보이는 넓은 소매, 높은 사모, 길게 패인 단령의 깃 묘사 등의 특징을 보인다. 작품을 제작한 화원화가로는 김진여(金振汝, 1675~1760), 장태흥(張泰興, ?~1729 이후), 박동보(朴東普, 1663~1735 이후), 장득만(張得萬, 1684~1764), 허숙(許俶, 1688~?)의 이름이 남아 있다. 본 화첩 크기는 53.3×37.5㎝이다. 용기의 크기는 외궤 46.5×63.3×11.5㎝, 내함 41.0×56.0×5.3㎝, 호갑을 펼친 상태의 크기는 117.0×105.8㎝이다. 글: 김수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