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전묘갈(宋有佺墓碣)
- 시대
- 조선
- 연대
- 1682년(숙종 8)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미상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 출토지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 /각자 /서자
- 이단하(李端夏) / 미상 / 심익현(沈益顯)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1682(숙종 8)에 세워진 송유전(宋有佺)의 묘갈(墓碣)이다. 찬자는 이단하(李端夏, 1625~1689)이고, 서자는 심익현(沈益顯)이다.송유전(1610~1664)의 자는 방형(邦衡)으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였으며 외삼촌인 최온(崔蘊, 1583~1659)에게서 공부하였다. 장성해서는 과거 공부에 오로지 일삼지 않고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문하에 유학하여 유훈(儒訓)을 따르니 선생(先生)이 그를 자주 칭찬하였다. 그는 병자호란을 겪은 지 10여년이 지나도록 과거시험을 치루지 않다가 늦게서야 부모님의 명으로 힘써 공부하여 시험에 나아가서 연이어 13차례의 과거를 보아 부모님의 뜻을 따랐다. 갑오년에 비로소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병신년 봄에 영릉참봉(英陵參奉)을 제수하였고 여름에 금오랑(金吾郞)에 뽑혀서 제수받았으며 겨울에 또 뽑혀 세자세마(世子洗馬)를 제수받았다. 정유년에 시직(侍直)으로 옮겨갔고 무술년에 종부시(宗簿寺) 주부(主簿)로 승진하였다가 장예원사평(掌隷院司評)으로 이직하였다. 겨울에 청안현감(淸安縣監)을 제수 받았다. 1664년(현종 5)에 진산군수(珍山郡守)를 제수받았는데 행로에서 질병에 감염되어 전주의 장사(庄舍)에 도착하여 결국 죽었다. 아들 창(昌)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올라갔으므로 그를 이조판서(吏曹判書) 겸(兼) 지의금도총(知義禁都摠)으로 추증하였다.묘갈의 내용은 주로 송유전의 가계 소개와 그의 훈업을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그의 학문과 덕업에 관해서 찬미하였다. 이 묘갈은 송유전에 관한 사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금석문 자료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김남규 | ||
| 판독문 | 김용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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