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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묘비(北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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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이 비는 1883년(고종 20년) 서울 종로의 경복궁 내에 건립된 북묘비이다.이 석비는 중국의 한나라가 멸망한 후 형성된 삼국시대의 유명한 촉한의 장수 관우를 제향하기 위하여 조선시대 고종 20년 (1883년)에 사묘를 서울 북쪽에 세우고 4년 후인 1887년에 그 내력을 비석에 기록하여 세운 것이다. 서울에는 관우를 모신 사묘로 동묘, 서묘, 남묘 그리고 북묘가 있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관우를 모신 사당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의 일이었다. 원래 중국의 도교에서는 명장 관우를 무력과 재물을 겸비한 신으로 섬기기 시작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 온 명나라의 장수 진린과 병사들이 관우에 대한 신앙심이 지극하여 남대문밖에 임시 사묘를 만들고 참배하다가 1598년(선조 31년)에 처음으로 남묘를 세웠다. 그후 1602년(선조 35년)에는 동묘를 세우고 1883년(고종 20년)에는 북묘, 1902년(광무 6년)에는 서묘가 세워졌는데 지금은 동대문 밖의 동묘와 사당동의 남묘만이 남아 있다.북묘는 서울 명륜동의 홍덕골에 있었는데 예로부터 꽃과 나무와 연못, 정자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고종 임금은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준 중국 명나라와 장수 진린을 기념하기 위하여 북묘를 짓고 손수 북묘비의 비문을 지었으며 글씨는 민영환이 썼다.북묘비는 조선왕실에서 세운 석비답게 높직한 댓돌 위에 세워진 육중한 빗돌의 당당한 풍채와 간결하고 엄숙한 조형미 그리고 비면에 개겨진 또렸하고 질서있는 해서의 글씨체가 돋보여 조선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석비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현재 탁본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탁본된 연대는 1980년대로 추정된다.
북묘비
성상어제
대체로 성인이 신도에다 가르침을 마련한 때부터 사전이 있어 각각 마땅히 제사를 지낼 곳에 제사를 지내왔는데, 한 나라 수정후 형주목 추봉무안왕 관공, 관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존모하지 않은 자가 없어 거의 집집마다 신주로 모시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영검에 따른 기적이 수시로 나타나서일 뿐만 아니라, 특히 그 정충의열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응결지어 있어서 자연히 천성적으로 다 함께 좋아해서인 것이다.
우리 도성에 동 · 남 두 사당이 있는데 하나는 숭례문 밖에 있고 하나는 흥인지문 밖에 있다. 옛날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 군사가 우리나라에 구원병으로 왔을 때, 관왕이 여러 번 영검을 보여 그 도움을 받고 삼도가 수복되고 팔도가 다시 안정되었다. 이리하여 유격장군 진린이 남묘를 창건하고, 무신 만 세덕이 칙명을 받들고 또 동묘를 세우니 그 때는 우리 선묘조 무술년과 경자년이었다. 그 후부터 열성조에서 서로 이어 한결같이 받들어서 명 · 송 · 찬 · 술 등 임금의 문장이 빛나니 아, 성대한 일이다.
나는 즉위한 이후 경외하고 받들기를 늦추지 않고 더한층 정성을 들였다. 어느 날 왕이 나의 꿈속에 현몽하고 또 왕비의 꿈에도 현몽하여 지성스럽게 돌보아주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리를 물색하여 사당을 숭교방 동북쪽 모서리 송동 증주벽립이라 새긴 아래에 세우기로 하고 내부의 자금을 지출하여 그 역사를 도왔다. 이듬해 계미년 가을에 준공하고 이를 북묘라고 이름 하였는데, 상설 등 의장은 다 남묘의 방식을 따랐다. 10월 무진일에 친히 전작례를 행하였는데 왕세자가 따라 함께 갔다. 또 관서 도신원 · 강진에 있는 것과 똑같게 하도록 하였으니, 혼령이 세상에 내려오는 것을 드러내고 오랜 세월 동안 감응하는 것을 추앙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앞서 임오년 여름에 병변이 일어나 역도가 대궐을 범하여 재앙의 기미가 예측할 수 없었는데 곧 그들이 해산되어 차례차례 사로잡아 법에 붙였다. 그 후 3년째인 갑신년, 갑신 겨울에 역란이 일어나 나는 전궁의 상하와 함께 관왕의 사당으로 피신하였는데 그 당시 적의 세력이 커서 놀라운 일이 순간에 일어날 상황이므로 황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윽고 흉도는 잡히고 적병은 도망쳐 피신했던 행차가 무사히 돌아오고 종사가 편안해졌다. 전후에 걸쳐 변고가 생겨 위급할 때 보이지 않게 작용하여 위태로움을 바꾸어 편안하게 하였으니 이는 누구의 힘이겠는가. 지난 날 꿈속에서 만나 장차 돌보아 줄듯이 한 일이 어찌 분명하고 큰 증험이 아닌가. 가령 어떤 사람이 국가를 위해 재변을 막고 환난을 제거했다면 비록 한 때의 공일지라도 반드시 포상하고 보답하면서 깊이 새기고 잊지 않겠다고 하는데, 더구나 햇수는 천 년이 지났고 지역은 만 리나 거리가 있음에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감응하기를 오늘날까지 여러 차례이니 감격하는 마음이 과연 어떻겠는가. 대체로 총명한 영령은 천지간에 깔려 있어서 가지 않고도 이르고 치닫지 않고도 빨라 만약 난적 요얼이 강상을 범하고 순리를 어기는 일이 있을 때는 번개처럼 빨리 가 벼락처럼 쳐서 깨끗이 몰아내니, 병기의 날카로움으로도 미칠 수 없고 도끼의 위력으로도 능가할 수 없는 힘으로 반드시 천토를 행하고 음주를 베푸니 과연 얼마나 신령한다.
삼가 생각하건데 신도는 총명 정직하여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한결같다면 영원하여 끝이 없는 것이니 어찌 과인만이 신의 도움을 입을 것인가. 장차 대대로 억만 자손이 이를 의지하고 기대어 민생은 길이 편안하고 국가는 더욱더 발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