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리6호분출토양관와위사의명전(宋山里六號墳出土梁官瓦爲師矣銘塼)
- 시대
- 백제
- 연대
- 6세기
- 유형
- 와·전
- 재질
- 흙
- 크기
- 장변 길이 30.0cm, 단변 무문면(無紋面) 길이 13.5cm/문양면(紋樣面) 길이 10.0cm, 두께 4.0cm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 출토지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6호분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송산리 6호분(벽화(壁畵) 전축분(塼築墳))의 폐쇄용전(閉鎖用塼)에서 수습되었다. 장변(長邊)의 일측면(一側面)에 예리한 공구를 가지고 초서(草書)로 우서(右書) 음각(陰刻)하였는데 자경은 3.2cm이다. 태토는 세미하고 견고하게 소성되었으며 색조는 회색이다. 장변의 길이는 30.0cm이고 단변(短邊)의 무문면(無紋面)의 길이는 13.5cm, 문양면(紋樣面)의 길이는 10.0cm이며 두께는 4.0cm이다.‘양(梁)’자 다음의 두 글자에 대해서는 ① 양(梁)으로부터 초빙해온 전공명(塼工名 : 關野貞) ② ‘관와(官瓦)’(朴容塡) 또는 ‘관품(官品)’(輕部慈恩)으로 판독을 하고 ‘관요(官窯)제품’의 의미로 보고 있다. ‘관와(官瓦)’로 보는 견해가 옳을 듯하며, 명문의 뜻은 양(梁)의 관영(官營) 공방(工房)의 와(瓦)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즉 백제의 와·전 제작에 있어 그 계통을 중국의 남조(南朝) 양(梁)에 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변(短邊)의 일측면(一側面)에는 팔엽연화문(八葉蓮花文)이 시문(施文)되어 있는데, 이는 무녕왕릉에 사용된 연화문전과 동일하며 전평면(塼平面)의 승석문(繩蓆文)도 동일하다. 따라서 송산리 6호분에 사용된 전의 제작시기와 무녕왕릉에 사용된 전의 제작 시기가 같다고 할 수 있으며, 6호분의 연도(羨道)와 현실(玄室) 축조전(築造塼)에서는 연화문전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명문전이 본래 왕릉(王陵) 축조용전(築造用塼)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김영심 | ||
| 판독문 | 輕部慈恩 | ||
| 판독문 | 김영심 | ||
| 판독문 | 안승주 | ||
| 판독문 | 박용전 |
참고문헌
|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Ⅰ, 國史編纂委員會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 단행본 | 1989 | 국립부여박물관, 1989, 『백제의 와전』(특별전) |
| 단행본 | 1988 | 國立公州博物館, 1988, 『百濟瓦當特別展』 |
| 단행본 | 1983 | 국립부여박물관, 1983, 『百濟의 瓦塼圖錄』, 百濟文化開發硏究院 |
| 논문 | 1975 | 安承周, 1975, 「百濟古墳의 硏究」『百濟硏究』7·8 |
| 논문 | 1973 | 朴容塡, 1973, 「公州出土의 百濟瓦·塼에 關한 硏究」『百濟文化』6 |
| 단행본 | 1946 | 輕部慈恩, 1946, 『百濟美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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