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비(紺岳山碑)
- 시대
- 신라
- 연대
- 540~576년(법흥왕 27~진흥왕 37) 또는 579~632년(진평왕 1~54)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비신높이 163 너비 상부 76 너비 하부 70 두께 20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40-2 감악산 정상
- 출토지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산25 감악산
- 서체
- 미상
- 찬자/각자/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감악산(紺岳山) 정상에 우뚝 서있는 이 고비(古碑)는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 석비로 높이 170cm, 너비 70∼79cm, 두께 15∼19cm의 규모이다. 이 비에는 전혀 글자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몰자비(沒字碑)’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사적비’·‘빗돌대왕비(비뜰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비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속전에 의한 기록만이 존재하고 있다.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지지(大東地志)』적성조(積城條)에서 감악산단(紺岳山壇)을 기술하면서 상유고비(上有古碑)라 기록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발간된 『적성군읍지(積城郡邑志)』에도 그 소재를 밝히면서 명문(銘文)의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1982년 6월 5일 동국대학교 감악산고비 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이 비를 조사한 결과,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와 흡사하고 적성지역이 전략적 요지로서 진흥왕대에 영토확장 정책에 따라 세력이 미쳤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제5의 진흥왕순수비일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그 역시 결론을 낼 만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또 한편에서는 ‘진평왕비(眞平王碑)’일 가능성도 제기하였으나, 그 역시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앞으로 이 비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판독문/해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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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 단행본 | 2001 | 경기도박물관, 2001,『임진강』, 경기도박물관 |
| 논문 | 2001 | 정우영, 「운계사 고석비와 감악산 무속신앙의 시원」『경기향토사학』6, 2001. |
| 논문 | 1983 | 이용범, 「감악산 고비에 대하여」『불교미술』7, 198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