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승인봉니(夫租丞印封泥)
- 시대
- 낙랑
- 연대
- 중국 한대(漢代)
- 유형
- 인장·봉니
- 재질
- 흙
- 크기
- 인면(印面) 2.05cm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 출토지
- 낙랑지역(평양시 남쪽 토성지)
- 서체
- 미상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봉니는 1822년에 중국 사천성(四川省)에서 처음 발견된 후 수많은 예가 출토·발견되면서 1920~30년대에 집대성되었다. 낙랑지역에서는 1918년경부터 수집되면서, 주로 평양 남쪽의 토성지에서 출토·수습되었는데, 그 총수가 200점에 이르고 있다. 낙랑지역 출토 봉니는 대체로 한대(漢代)에 한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지역에서의 인장의 사용 시기가 한대에 한정된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현상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봉니는 대부분이 낙랑군과 그 소속현의 관인(官印) 봉니이며, 사인(私印) 봉니의 예는 많지 않다. 또 관인 봉니도 『한서(漢書)』 권28하 지리지(地理志)에 보이는 낙랑군 소속의 25현 중 열구현(列口縣)·탄열현(呑列縣)·화려현(華麗縣)의 관인 봉니만은 현재까지 출토되고 있지 않다. 낙랑 군현의 관인 봉니는 한반도 서북부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유력한 증거로 거론되었는데, 그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본 봉니는 인문(印文)이 4자 2행이다.
관련 금석문
판독문/해석문
전체 2개
| 해석문 | 임기환 | ||
| 판독문 | 임기환 |
참고문헌
전체 13개 / 페이지 ( 1 / 2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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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행본 | 1976 |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
| 논문 | 1976 | 田村晃一, 1976, 「樂浪郡地域出土の印章と封泥」『考古學雜誌』62-2 |
| 논문 | 1973 | 리순진, 1973, 「마한의 문화」『고조선문제연구』, 사회과학출판사 |
| 논문 | 1962 | 田村晃一, 1962, 「樂浪郡地域出土の印章と封泥」『考古學雜誌』62-2 |
| 단행본 | 1959 | 藤田亮策·梅原末治, 1959, 『朝鮮古文化綜鑑』3 |
| 논문 | 1955 | 和田淸, 1955, 「玄?郡考」『東亞史硏究 - 滿洲篇』 |
| 논문 | 1951 | 池內宏, 1951, 「樂浪郡考」『滿鮮史硏究-上世-』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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