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장백동인(夫租長白銅印)
- 시대
- 낙랑
- 연대
- 중국 한대(漢代)
- 유형
- 인장·봉니
- 재질
- 금속
- 크기
- 인면(印面) 2.2cm, 방형(方形), 두께 0.5cm
- 소재지
- 미상
- 출토지
- 평양시 락랑구역(樂浪區域) 정백동(貞柏洞, 구 정백리) 2호분
- 서체
- 해서체(正書體)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중국에서 인장(印章)제도는 진대(秦代)에 마련되었고, 한대(漢代)에 계승하여 정식화되었다. 한대의 인장은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으로 나뉜다. 관인은 인(印) 또는 장(章)(太守·御史·將軍)이라 칭해지며, 지위 고하와 신분에 따라 용어·인장의 재료·형태와 크기 등에 구분이 있었다. 사인은 사인(私印)·인신(印信)·신인(信印)으로 불리며, 그 형식은 일면인(一面印)·양면인(兩面印)·자모인(子母印) 등으로 다양하였다. 낙랑지역에서 출토된 인장은 주로 사인으로, 한대 인장의 형식으로 제작되어 대개 한대에 한정하여 제작·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인장은 한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것과 낙랑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본 인장은 「고상현인(高常賢印)」과 같이 출토되었다. 손잡이는 짐승모양인데, 네 다리로 서서 머리를 약간 쳐든 모습이다. 인문(印文)은 정서(正書)이며, 은상감한 것으로, 부장품용으로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 금석문
판독문/해석문
전체 3개
| 해석문 | 임기환 | ||
| 판독문 | 임기환 | ||
| 판독문 | 황기덕 외 |
참고문헌
전체 10개 / 페이지 ( 1 / 1 )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Ⅰ, 國史編纂委員會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 단행본 | 1986 | 金元龍 편, 1986, 『韓國考古學年報』13 |
| 논문 | 1983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1983, 「락랑구역 일대의 고분 발굴 보고」『고고학자료집』6, 과학백과사전출판사 |
| 단행본 | 1976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1976, 『고조선문제연구론문집』, 사회과학출판사 |
| 단행본 | 1976 |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
| 단행본 | 1973 | 리순진 외, 1973, 『고조선문제연구』, 사회과학출판사 |
| 논문 | 1971 | 황기덕 외, 1971,「기원전 5세기~기원 3세기 서북조선의 문화」『고고민속논문집』3, 사회과학출판사 |
| 논문 | 1955 | 和田淸, 1955, 「玄?郡考」『東亞史硏究 - 滿洲篇』 |
| 논문 | 1951 | 池內宏, 1951, 「樂浪郡考」『滿鮮史硏究-上世-』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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