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예군은인(夫租薉君銀印)
- 시대
- 낙랑
- 연대
- 중국 한대(漢代)
- 유형
- 인장·봉니
- 재질
- 금속
- 크기
- 인면(印面) 2.05cm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 출토지
- 평양시 락랑구역(樂浪區域) 정백동(貞柏洞, 구 정백리) 부조예군묘(夫租薉君墓)
- 서체
- 소전체(小篆體)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중국에서 인장(印章)제도는 진대(秦代)에 마련되었고, 한대(漢代)에 계승하여 정식화되었다. 한대의 인장은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으로 나뉜다. 관인은 인(印) 또는 장(章)(太守·御史·將軍)이라 칭해지며, 지위 고하와 신분에 따라 용어·인장의 재료·형태와 크기 등에 구분이 있었다. 사인은 사인(私印)·인신(印信)·신인(信印)으로 불리며, 그 형식은 일면인(一面印)·양면인(兩面印)·자모인(子母印) 등으로 다양하였다. 낙랑지역에서 출토된 인장은 주로 사인으로, 한대 인장의 형식으로 제작되어 대개 한대에 한정하여 제작·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인장은 한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것과 낙랑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부조예군묘(夫租薉君墓)는 단장목곽분(單葬木槨墳)으로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동모(銅矛), 동탁(銅鐸), 철제장검·단검·대도, 철부(鐵斧) 및 다수의 마구류, 수레부속이 출토되었다. 본 인장의 인문(印文)은 반서(反書)이고, 타뉴(駝鈕)이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임기환 | ||
| 판독문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 ||
| 판독문 | 임기환 | ||
| 판독문 | 백련행 |
참고문헌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Ⅰ, 國史編纂委員會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 단행본 | 1986 | 金元龍 편, 1986, 『韓國考古學年報』13 |
| 논문 | 1985 | 「夫租薉君에 대한 고찰」『韓國史論』12, 서울대 |
| 단행본 | 1976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1976, 『고조선문제연구론문집』, 사회과학출판사 |
| 단행본 | 1976 |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
| 단행본 | 1973 | 리순진 외, 1973, 『고조선문제연구』, 사회과학출판사 |
| 논문 | 1968 | 「租薉君銀印をめぐる諸問題」『朝鮮學報』46, 朝鮮學會 |
| 논문 | 1964 | 리순진, 1964, 「부조예군 무덤에 대하여」『고고민속』4, 사회과학원출판사 |
| 논문 | 1962 | 백련행, 1962, 「부조예군 도장에 대하여」『문화유산』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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