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출토청동신수경(武寧王陵出土靑銅神獸鏡)
- 시대
- 백제
- 연대
- 6세기 초
- 유형
- 동경
- 재질
- 금속
- 크기
- 직경 17.8cm, 둘레높이(緣高) 0.7cm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 출토지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 서체
- 예서(隸書)
- 찬자/각자/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무령왕릉 현실(玄室) 내부 왕의 넘어진 족좌(足座) 북부에서 배문부(背文部)를 위로 한 채 발견되었다. 후한대에 유행한 경식(鏡式)의 하나인 방격규구경(方格規矩鏡)의 문양을 본떠 만들어졌으나, 한경(漢鏡)의 문양뿐 아니라 거기에 별개의 새로운 주수문(走獸文)을 양각하여 하나의 특이한 경배문(鏡背文)을 구성하였다. 중앙에 있는 원뉴(圓鈕)를 둘러서 주위에 방형(方形) 윤곽을 만들었으며 그 내부에는 작은 유(乳)를 배열하고 그 사이에 십이지(十二支)의 문자를 하나씩 새겼다. 내구(內區)의 문양은 T·L·V자형의 문양과 8개의 원좌유(圓座乳)들 사이에 사신(四神) 기타 조수(鳥獸)를 세선(細線)으로 나타내고 있으나 그 위에 겹쳐서 배치된 문양들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다. 내구(內區) 주위에는 명문대(銘文帶)가 있는데 이 명문은 한경(漢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선사상을 나타낸 것이며, 외구(外區)에는 거치문대(鋸齒文帶)와 복선파문대(複線波文帶)가 있고 그 외주(外周)는 소문(素文)으로 끝나는데 이 부분의 단면은 약간 삼각형을 이루고 융기되어 있다. 이와 동일한 문구 ‘갈음옥천기식조(渴飮玉泉飢食棗)’를 가진 수대경(獸帶鏡)이 일본 군마현(群馬縣) 고기시(高崎市)의 관음총(觀音塚) 고분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하여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기(神功紀) 52년조의 칠자경(七子鏡)과의 관련성이 논급되기도 하는데, 중국에서 만든 경(鏡)을 백제가 먼저 수입해서 그 일부를 일본에 보낸 것이라고 추정했던 것이다. 전체의 직경은 17.8cm이고 둘레높이(緣高)는 0.7cm이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김영심 | ||
| 판독문 | 황수영 | ||
| 판독문 | 조동원 | ||
| 판독문 | 허흥식 | ||
| 판독문 | 樋口隆康 | ||
| 판독문 | 무령왕릉발굴조사보고서1 | ||
| 판독문 | 김영심 |
참고문헌
|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 논문 | 2001 | 김덕영, 2001, 「청동거울에 담겨 있는 백제와 왜의 역사」『한국민족학연구』5, 檀國大學校 韓國民族學硏究所 |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Ⅰ, 國史編纂委員會 |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 논문 | 1991 | 오다 후지오, 1991, 「일본에서의 무령왕릉계 유물 연구 동향」『무령왕릉의 연구현황과 제문제』,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 |
| 단행본 | 1986 | 문화유산관리국, 1986, 『武寧王陵』 |
| 단행본 | 1984 | 許興植, 1984, 『韓國金石全文』古代篇, 亞細亞文化社 |
| 논문 | 1983 | 李蘭暎, 1983, 「韓國의 銅鏡」『硏究論叢』83-13, 韓國精神文化硏究院 |
| 단행본 | 1981 | 趙東元, 1981, 『韓國金石文大系』2, 원광대학교출판부 |
| 단행본 | 1976 | 黃壽永, 1976, 『韓國金石遺文』, 一志社 ; 1994, 復刊 ; 1999, 『金石遺文 黃壽永全集4』, 혜안 |
- 담당부서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문의 : 042-860-9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