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유부묘표(蔡有孚墓表)
- 시대
- 조선
- 연대
- 1632년(인조 10)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미상
-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호계면 별암리 176-1
- 출토지
- 경상북도 문경시 호계면 호계리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각자/서자
- 이준영(李準英)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경상북도 문경시 호계면 별암리 176-1에 있는 채유부(1550~1593)의 묘비이다. 전면에 ‘통정대부 장예원판결사 인천채공 휘유부지묘(通政大夫掌隷院判決事仁川蔡公諱有孚之墓) 숙부인 순천박씨 부(淑夫人順天朴氏祔)’라고 새기고 측면과 후면에 행적을 적었다. 채유부의 자는 백침(伯忱), 호는 간송정(澗松亭), 본관은 인천으로 고려 때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진 보문(寶文)의 후손이다. 고조 신보(申保)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증조 수(壽)는 예조참판을 지냈고, 조 소권(紹權)은 형조판사를 지냈다. 고 무태(無怠) 사헌부 지평에 천수(薦授)되었으며 비는 종실인 봉령군(鳳嶺君) 철암(鐵嵒)의 따님이다. 어려서 거인의 뜻이 있었고 성품이 엄정하고 청렴하였다. 1573년에 덕행과 도의로 경릉참봉(康陵參奉)에 천수되었다. 임진의 왜란에 중·계씨에게 명하여 대대로 녹을 먹은 자손으로 임금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게 하였다. 배 숙부인 순천박씨는 사과(司果) 효창(孝昌)의 따님인데 4남4녀를 두었다고 기술하였다. 이 비는 채부유의 가계와 행적, 교우관계와 당시 사람들의 평가 및 임진왜란 당시의 선비들의 대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문경의 금석문 1』 | ||
| 판독문 | 『문경의 금석문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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