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황공제단비(平海黃公祭壇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800년(정조 24)
- 유형
- 비
- 재질
- 돌
- 크기
- 높이 120.0 너비 50.0 두께 22.0
-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산 102
- 출토지
- 미상
- 서체
- 해서
- 찬자/각자/서자
- 김약련(金若鍊) / 미상 / 이헌순(李獻淳)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황유정(黃有定, 1343~?)의 본관은 평해이고, 초명은 지정(知定), 호는 미균(米균)이다. 안축의 외손자이자 정도전의 매부이다. 고려 말에 초계군수, 형조·공조전서를 지냈다. 초계군수 시절 단정·청렴하여 초계군민과 아전들이 오래도록 그 덕을 기렸다고 한다. 조선 초에 형조·예조판서를 지내고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친 다음 노환을 이유로 낙향하여 영주의 구성 아래 동리의 자택에 ‘소쇄헌’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이곳이 바로 그의 장인인 정운경에게서 물려받은 삼판서고택이다. 그는 이 저택의 두 번째 판서 주인이 되어 다시 외손자 김담에게 물려주었다. 황유정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덕동에 후손들이 1799년(정조 23) 제단을 설치하였는데, 김약련(金若鍊, 1730~1802)이 제단비의 음기를 지었다. 1967년에 제단 앞에 재계할 수 있는 재실인 사모정(思慕亭)을 지었고, 1969년 김승학(金承學)이 기문을 지었다. 1975년에는 재실 옆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김진수(金晉秀)가 비명을 짓고, 장건덕(張建德)이 글씨를 썼다. 평해황공제단비는 앞면 비신에 글씨는 비교적 판독이 양호하다. 뒷면과 오른쪽면, 왼쪽면은 마모가 있어 판독에 어려움이 있으나 후손들이 새로 세운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의 비석을 참고해서 판독은 해결이 된다. 서체는 중국 당나라 구양순 해서체와 안진경 해서체가 섞여 있는 한석봉 해서체이다. 석비의 양식은 전체의 재질이 화강암을 사용하였고 운수방부형(雲首方趺形)을 취하고 있는데 가운데 꽃문양이 2개가 있어 우아한 모습이다.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이 있다.
판독문/해석문
| 해석문 | 원종석 | ||
| 판독문 | 원종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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