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마현산성(金海馬峴山城) |
|---|---|
| 설명 | 경상남도 기념물.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번지에 위치한다. 김해시의 북동부는 크게 무척산과 석룡산, 금동산이 자리잡고 있고 그 외곽을 낙동강이 에워싸는 형국으로 자연적인 방어선을 형성하게 되는데 큰 산지의 계곡을 따라 김해읍에서 낙동강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무척산은 식산이라고도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김해도호부의 북쪽 30리에 있으며 남으로는 분산에 연결되며 아주 높고 크다.”고 하였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무척산이 생림면에 있으며 험준하여 안에 사철 마르지 않는 내가 흐른다. 그리고 옛 큰 절터가 있는데 산성을 쌓을 만 하다.”고 기록하였다. 마현산성은 김해읍에서 북쪽으로 난 지방지도를 따라 올라가면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 삼랑진읍과 만나게 되는데 낙동강으로 향하고 생철리와 경계를 이루는 마현고개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위치는 생림면 소재지인 봉림에서 밀양 삼랑진으로 가는 지방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 정도 올라가면 마현마을이 있는데 이마을 건너편 즉 도로 오른쪽에 있는 산성이 바로 마현산성이며 마현산성의 북동쪽으로는 천주교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북에서 남으로 발달한 무척산의 주된 줄기에서 서쪽으로 돌출한 독립된 봉우리의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석성으로 마현산(해발 215m)은 정상부가 뾰족하고 경사가 급한 산이다. 동쪽과 북쪽 일부는 천연의 암벽으로 되어 있으므로 성벽은 이 절벽을 이용하면서 길게 설치되어 있으며 서쪽 중앙부가 약간 안으로 밀려 들어와 전체가 누에고치 모양을 이루었다. 산성에서 주변을 바라보면 북쪽으로는 생철교 인근의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북서쪽으로는 마현산의 본줄기인 무척산이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쪽으로는 봉림리 청자가마터가 위치한 작약산과 남쪽으로는 한림면의 나전고개가 시계에 들어온다. 성벽이 많이 붕괴되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며 북쪽과 남쪽에 각각 문지가 남아 있다. 성벽은 할석을 이용하여 밑이 넓고 위로 가면서 좁아지는 협축으로 쌓았다. 그리고 서 쪽 중앙부의 경사가 심한 곳에는 주성벽 아래쪽에 붕괴를 막기 위한 보조성벽을 2단으로 만들어 축조하였다. 전체 길이 600m 정도이며 잘 남아 있는 성벽은 높이 4m 정도이다. 북문의 구조는 중앙이 좁고 내외 부분이 넓게 만들어져 있으며 특히 외부에는 옆의 성벽을 길게 하여 성 내부가 직접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특히 마현산성은 험한 지형을 별다른 처리없이 이용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암반이 드러난 구간은 암반을 지대로 이용하여 성석을 잇대어 쌓았으며 나머지는 석축만으로 성벽을 쌓았다. 특히 절벽으로 이루어진 북·동·남벽의 경우는 급한 경사면을 그대로 두어 부분적으로는 성벽을 쌓지 않았다. 지표조사 결과 모두 4개 지점에 걸쳐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주된 건물지는 제1건물지와 제2건물지로 보인다. 제1건물지는 동문지에서 남쪽 방향에 형성된 약간 높은 고지의 정상부 부근에 위치하는데 민묘의 돌담처럼 2∼3단으로 축조한 석축이 나란하게 2열로 형성되어 있다. 제2건물지, 3건물지도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곳에 군데군데 석축이 남아 있다. 북문지 부근에 남아 있는 제4건물지는 산의 경사면을 일부 절개하여 정지한 후 아래 쪽에 석축을 4∼6단 정도 쌓았다. 한편 문지는 동문지, 서문지, 북문지 3개소가 확인되는데 그 중에서 북문지의 폭은 3m 내외로 추정된다. 아직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지표조사 결과 분청사기편이 다수 출토되어 주된 사용 시기를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마현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언급되지않고 『여지도서』고적조 신증에 의하면 마현산성은 부의 북쪽 35리에 있는데 둘레가 1035척이나 지금은 폐하였다고 하였고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과녀산성이라도 하며 김해부에서 북쪽으로 30리, 둘레 1,300척이고 우물은 하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현산성의 성벽 축조 상태가 대단히 조잡하고 성벽 또는 일부 구간은 자연암반 구간을 연결한 것에 불과한 것도 있어 계획적인 축성으로 보기는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다. 기록에 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보이지 않다가 『여지도서』고적조에 나타나 있어 아마도 임진왜란 당시 갑자기 축조하였으나 성내는 경사가 급하고 물을 구하기 어려운 곳으로 성으로 계속 사용되기가 어려워 18세기에는 이미 폐성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마현산성은 무척산에서 독립하여 있고 전망이 탁월하고 경관이 수려하므로 마현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던 장소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망이 뛰어나고 경관이 수려한 장소가 제사터로 이용되었던 사례는 최근 발굴조사를 통하여 발견되고 있으므로 차후 마현산성의 복원 정비 등으로 정밀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 점도 분명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정의도) |
|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김해시-(동아대학교박물관, 1998), 마현산성 종합정비 기본계획수립 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아시아문화재단 낙동문화학술연구소, 2007) |
| 구분 | 용어 |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2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