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임당동 고분군 유물(慶山 林堂洞古墳群 遺物)
설명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에 위치한다. 수천 기의 고분이 발굴된 임당동 고분군에서는 수만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묘제별로 그 유물의 종류와 형식도 달라 고고학의 연구, 특히 원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 이전까지 영남 지방 문화의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임당동 고분군의 분묘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50년 무렵까지의 목관묘(木棺墓) 단계, 그 후 350년 무렵까지의 목곽묘(木槨墓) 단계, 그 후 530년 무렵까지의 고총(高塚) 단계, 그 후 신라의 삼국 통일 이전까지의 석실묘(石室墓)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이 각 단계마다 영남 지방 전체의 문화 변천상을 담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이렇게 장기간에 걸친 분묘 출토 유물의 변화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유적은 이곳이 유일하다. 목관묘 단계의 분묘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단면이 삼각형인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주머니호,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 등의 무문토기류,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 주머니호, 단경호(短頸壺), 완(?) 등의 와질토기류, 세형동검(細形銅劍), 철검(鐵劍), 환두도자(環頭刀子), 철모(鐵?), 철촉(鐵鏃) 등의 무기류, 철겸(鐵鎌), 따비, 철부(鐵斧) 등의 농공구류와 함께 청동 거울, 오수전(五銖錢) 등의 한(漢) 대 유물도 출토되었다. 또한 가야금을 비롯한 칠기도 주목되고, 파쇄된 동경 편을 가공한 장신구도 눈에 띤다. 이러한 유물들은 기원전 2세기부터 임당동 고분군에 세력 집단의 무덤이 조성되어 목관묘 단계 내내 지속되었음을 보여 주고 원삼국 시대 영남 지방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목곽묘 단계는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장방형목곽묘의 시기와 뒤의 세장방형 목곽묘의 시기가 그것이다. 앞 시기의 분묘에서는 와질의 단경호(短頸壺), 화로모양 토기(爐形土器), 대부호(臺附壺) 등의 토기류와 대형 철모를 비롯한 각종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또 수정과 마노를 중심으로 한 장신구도 출토된다. 이 시기 유물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진한의 표지 유물로 인식되고 있는 와질의 오리 모양 토기(鴨形土器)와 고사리형(蕨手形) 장식이 가미된 장신의 철모이다. 뒤 시기의 분묘에서는 고식 도질토기라고 부르는 조기의 신라 토기가 출현하여 와질토기와 함께 부장되었다. 부장된 토기의 기종도 변화하여 다양해지는데, 발형기대(鉢形器臺), 고배(高杯), 컵형토기, 광구소호(廣口小壺), 소형 기대 등이 조기 신라 토기로 등장하였다. 이외 갑주와 대도를 비롯한 무기류의 부장이 이루어지고, 곡옥을 주체로 한 장신구도 출토되며 금박 유리옥도 발견되었다. 또한 무덤에는 순장이 실시되는데, 그 대표적인 고분이 경산 조영동 1A-19호묘이다. 이러한 사실은 임당동 고분군에 매장된 주인공들이 확실한 정치체를 형성하여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성립되어 있었음을 보여 주며, 경주를 중심으로 한 세력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고총 단계의 분묘는 임당동 고분을 대표하는 현상을 보여 준다. 이 고총에서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모든 종류의 신라 토기를 갖추었으며 피장자의 신분을 알려 주는 장신구 외에 마구류, 무기류, 의기류, 금속 용기류, 토제품 등이 고루 출토되었다. 다양한 토기류를 비롯한 유물은 고총 단계 전 기간 동안의 형식 변화 모습을 보여 주는데, 특히 임당동 고분군이 연접되어 있는 특징이 있어 층위학적으로 그러한 유물의 변천상을 잘 증명해 준다. 또한 모든 큰 고분에서는 2~6인을 함께 매장한 순장의 풍습도 확인되었다. 고총 단계의 유물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복식으로 인정되는 착장 위세품이다. 금동관(金銅冠), 금동이나 은제의 관모, 금제 이식(耳飾), 금제 수식(垂飾), 곡옥부경식, 금은제의 반지와 팔찌, 금동제의 환두대도(環頭大刀), 금동이나 은제의 과대(?帶), 금동 식리(金銅飾履) 등이 그것으로 다른 신라의 지방 고총에 비해 양질이며 갖추어진 세트가 출토되었다. 이 위세품은 당시 신라의 중앙 경주에서 출토되는 것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 식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임당동 고분군의 초기 고총에서 출토되는 금동관은 ‘出’자형 세움 장식의 옆 가지가 직각을 이루지 않고 둔각을 이루며 벌어지는 특징이 있어 다르다. 따라서 이것은 경산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식을 비롯한 대부분의 착장 금공품은 경주에서 제작되어 피장자의 출생, 혼인, 취임, 장례 등의 선물로 분여 받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특히 제작 공정이 좀 더 복잡한 금제의 세환이식(細環耳飾)이나 태환수식(太環耳飾)으로 알 수 있는데, 그 제작 기법이나 형식이 경주에서 출토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착장 위세품은 성복 유물이라고 할 수도 있어 화려한 장례 의식을 우리에게 전하며 그러한 장례가 신라식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고총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는 등자(?子), 행엽(杏葉), 운주(雲珠), 안교(鞍橋), 재갈(?), 마령(馬鈴) 등으로 구성된 마구도 주목된다. 이러한 마구는 실용적인 철제품도 있으나 금동이나 은으로 제작된 장식 마구(裝飾馬具)가 대단히 많다. 그리고 그러한 마구의 형식 역시 경주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과 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입주부운주, 심엽형(心葉形)과 편원어미형(扁圓魚尾形)의 행엽, 금동장(金銅裝)의 등자, 금동제 안교 등이 그러하다. 임당동 고분군의 고총에서는 많은 철제품도 출토되었다. 그중 무기류로는 찰갑으로 구성된 갑옷과 투구(?), 마갑(馬甲), 철모와 물미(綴), 철제 대도, 다양한 철촉과 성시구 등이 있다. 이 중 금동의 성시구 가운데는 화려한 용문이 투조로 베풀어진 것이 발견되어 높은 공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또 철촉은 화살의 부속구인 골제의 오늬와 함께 출토되어 당시 화살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농·공구류의 철제품도 많이 출토되었는데, 따비, 삽날, 낫(鎌), 도끼(鐵斧), 쇠스랑(鐵齒), 살포(鐵?) 등의 농구류와 모루, 망치(鐵鎚), 집게(鉗) 등의 철을 다루는 공구 등이 있다. 또한 임당동 특유의 겸형철 기(鎌形鐵器)와 유자이기(有刺利器)로 구성된 철제의 의기류가 빠짐없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기류는 신라토기의 모든 기종을 포괄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이 부곽에 몇 점씩 부장된 대호류이다. 그 크기가 높이 140㎝에 달하는 것이 있고, 거기에 곡물을 넣어 부장한 양상은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엿보게 한다. 이외 각종의 토기 속에서는 많은 식물과 동물 유체가 남아 있어 당시 식생활의 모습을 전한다. 어류로 잉어, 참돔, 방어, 상어 등, 포유류로 말, 소, 개, 멧돼지, 돼지 등의 뼈, 조류로 꿩, 기러기, 닭 등의 뼈, 패류로 조개, 고동, 참굴 등이 출토되었고, 벼를 부장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석실묘 단계에 들어서면서는 무덤의 규모도 작아질뿐더러 출토 유물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 출토 유물로는 고배, 병형토기(甁形土器) 등의 토기류, 도자 등의 농·공구류, 금동 이식 등의 장신구가 있다. 특히 장신구의 부장이 현격하게 줄었고, 무구류나 마구류의 부장이 사라졌으며 토기도 몇 점의 공헌용만 부장된 특징이 있다. 이러한 분묘 변천 단계에 따른 유물의 변화는 신라 고분 유물의 변천 과정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의 변화 모습도 함께 알려 준다. 특히 고총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임당동 고분군과 경주 지역 세력 집단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도록 한다. 복식품의 경우 경주의 중심 고분인 황남대총과 천마총 등에서는 모든 제품이 금으로 제작된 것인데 비하여 임당동의 고총에서는 이식, 팔찌, 반지 등의 소품만 순금으로 제작되고, 나머지 부피가 큰 관이나 관식, 과대 등은 은이나 금동으로 제작되어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그러한 유물이 경주에서 제작되어 사여되었을 것이라는 가정과 함께 당시 임당동 고분군 세력 집단이 신라에 복속되어 지방으로 자리하였으나 그 세력이 반 자치적인 지배 집단으로 기능하면서부를 축적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신라의 간접 지배 형태라고 부르며 고총 체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후 석실묘가 축조 되면서는 신라의 직접 지배인 지방관 파견으로 분묘의 크기와 부장품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목관묘나 목곽묘의 단계에는 독립된 소국인 압독국의 지배층으로 임당동 고분군 축조 집단이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김용성)
참고문헌 대구·경산지역 고총고분의 연구(김용성,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임당발굴30주년기념특별전1982, 임당을 발굴하다(영남대학교박물관, 2012)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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