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황남동고분군(慶州皇南洞古墳群)
설명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53 외 527필지, 북천이 형성한 경주 선상지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북쪽에 나 있는 도로를 경계로 하여 노동동고분군, 노서동고분군과 구분되지만, 원래 같이 연결된 묘역으로 추정된다. 동쪽의 도로에 의해 황오동고분군, 인왕동고분군과 구분된다. 경주분지 중심에 있는 대규모 고분군 가운데 주 고분군으로 노동동고분군과 노서동고분군에서 남동쪽인 월성(月城)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분포하고 있다. 지정면적은 304,532㎡로 일제강점기에 부여된 고분 일련번호는 90∼114호, 151∼155호 등 모두 30기의 고총고분이 속하며, 고분 중 일부는 고분공원인 대릉원(大陵苑)으로 조성되어 있다. 황남동145호분(황남동 남총)은 황남동 457번지에 소재한 적석목곽묘로 1906년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시굴조사한 이후 1909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과 야쓰이 세이치(谷井齊一)가 조사하여 적석부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검총은 황남동 63번지에 소재한 적석목곽묘로 1911년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와 야쓰이 세이치(谷井齊一), 고토 게이지(後藤慶二)가 조사하였다. 봉토는 지름 42.7~44.5m, 높이 9.7m의 원형으로 목곽 내부까지 조사를 진행하였지만 철검과 숫돌 등이 출토되어, 조사방법이나 조사지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들 유물은 적석목곽분보다 앞서는 시기의 유물로 고분의 성격과 관련하여 주목되며, 고분의 수즙과 관련시킨 연구도 있다. 황남동82호분은 1931년 조선고적연구회의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발굴하였다. 봉토는 지름 20.8m, 높이 3.6m의 원분으로 동총과 서총 2기의 적석목곽묘가 확인되었다. 동총은 장축 방향이 동서향으로 부곽이 서쪽에 위치하며 서총은 장축 방향이 남북향으로 부곽이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황남동83호분은 1931년 조선고적연구회의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발굴하였다. 봉토는 동서 지름 20m 남북 지름 24m, 높이 3.5m이며, 적석은 동서 길이 7.8m, 남북 너비 5m로 동서 방향으로 긴 모습이다. 목곽은 길이 4.3m, 너비 1.2m로 머리 쪽에 유물부장곽을 두었다. 황남동109호분은 1934년 조선고적연구회의 사이토 다다시(齋藤忠)가 발굴하였다. 봉토는 동서 길이 10.1m, 남북길이 13m의 부정형으로 조사결과 모두 3기의 적석목곽묘가 서로 중첩된 모습이 확인되었다. 특히 3·4곽에서는 공통양식기의 유개고배가 출토되어 신라토기 편년에 중요한 기준근거로 사용되었다. 황남동파괴고분은 1964년 경주박물관에서 조사한 고분으로 황남동145호분(남총)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조사결과 4기의 적석목곽묘와 2기의 수혈식석곽묘가 조사되어 두 묘제가 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황남동151호분은 1965년 경주박물관에서 조사한 고분으로 횡구식석실묘 1기와 적석목곽묘 1기가 확인되었다. 먼저 조영된 적석목곽묘 위에 축조된 횡구식석실묘는 길이 3.43m, 너비 2m로 5매의 개석을 사용하였고, 내부에는 4개의 시상이 확인되었다. 경주 시내에서 처음 확인된 횡구식석실묘로 중요하다. 적석목곽묘는 부분조사되었다. 천마총은 1973년 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하였다. 봉토는 지름 47m, 높이 12.7m로 적석부의 두께는 6.1m이며, 목곽의 크기는 길이 660㎝, 너비 430㎝이다. 목관은 내면에 주칠을 한 후 금박으로 장식을 하였다. 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에 의해서 천마총으로 명명되었다. 황남동110호분은 1973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봉토는 동서 지름 5m, 남북 지름 9m, 높이 1.55m의 타원형이다. 적석은 동서 길이 7.9m, 남북 길이 4.2m, 주곽에 함몰된 깊이 1.6m이다. 목곽은 지하식으로 주곽과 부곽이 일렬로 배치되었고, 크기는 길이 500㎝, 너비 310㎝, 깊이 138㎝이다. 목관은 흑칠이 되었고 바깥에는 구갑문이 주칠로 장식되었다. 황남동 109호분에서 황남대총으로 이어지는 신라토기 편년에 있어서 기준자료이다. 황남대총은 황남동 53번지에 위치하며 문화재관리국에서 1973~75년까지 조사하였다. 2기의 대형 적석목곽묘가 나 란하게 중첩된 모습을 보여주는 표형분으로 고분을 축조하면서 대형 목조가설물이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남분은 남성, 북분은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남분이 선축된 후 북분이 후축되었다. 이외에도 미추왕릉지구를 정비하면서 담장시설을 새로 쌓는 과정에서 1~12지구, 주변도로 개설에 따른 계림로 고분군 발굴조사 등이 이루어졌다. 조사된 고분들은 대부분 적석목곽묘지만 수혈식석곽묘와 옹관묘 등도 확인되었다. 조영시기는 4~7세기로 편년되며, 경주지역 최대고분군으로 대형 표형분인 98호분과 단독분인 155호분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신라 적석목곽묘의 구조적 특징을 확인하였으며, 109호분과 110호에서 신라토기 편년의 기준자료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신라묘제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차순철)
참고문헌 新羅舊都慶州附近の古墳(今西龍, 歷史地理第十一卷第一號歷史地理一百號記念百名家論集, 1906), 慶州に於ける新羅の墳墓及び其遺物に就いて(今西龍, 東京人類學會雜誌第二百六十九號, 東京人類學會, 1908), 朝鮮古蹟圖譜3(朝鮮總督府, 1916), 慶州皇南里第八十二號墳·八十三號墳調査報告(有光敎一, 昭和六年度古蹟發掘報告第一冊, 1935), 慶州皇南里第百九號墳·皇吾里第十四號墳調査報告(齋藤忠, 昭和九年度古蹟調査報告第一冊, 1937), 황남리파괴분 발굴조사보고(황오리 4·5호 황남리 파괴분 발굴조사보고, 국립박물관, 1964), 황남리 제151호분(경주 황오리 제1·33호, 황남리 제151호 고분발굴조사보고, 문화재관리국, 1969), 천마총(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4), 미추왕릉지구 제10구역 황남동 제110호분 발굴조사보고(경주지구고분발굴조사보고서 1, 문화재관리국 경주사적관리사무소, 1975), 황남동고분 발굴조사보고(영남대학교박물관·문화재관리국, 1975), 황남대총(북분)(문화재관리국문화재연구소, 1985), 황남동 205번지 부장품(최종규, 고고학지 1,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89), 황남대총(남분)(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4), 경주 황남동 106-3번지 고분군 발굴조사보고서(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1995), 신라고분 기초학술조사연구Ⅲ-문헌·고고자료-(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7), 신라고분 환경조사 분석보고서Ⅳ-정밀측량조사-(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8)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황남동고분군(慶州皇南洞古墳群)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