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철소(鐵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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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고려 시대 특수 행정 집단인 소所 가운데, 철의 생산을 담당하던 곳을 지칭한다. 철은 인류가 존재한 이래 가장 중요한 지하자원이다. 이미 고대부터 각국은 철을 생산하여 농기구와 철제 무기를 만들었으며, 고려 시대에 이르면 철은 불상 제작, 화폐 등 더욱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고려 정부는 광산물, 수산물, 특수 농산물, 수공업 제품 등의 주요 물자 생산지를 소로 편제하여 별도의 수취 체계를 마련하였다. 고려 시대의 소는 금소·은소·동소銅所·철소의 광산물, 염소鹽所·곽소藿所·어량소의 해산물, 강소薑所·다소茶所의 특수 농작물, 사소絲所·주소紬所·지소紙所·와소瓦所·탄소炭所·묵소墨所의 수공업 제품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철소는 특산물을 생산하는 소 중 가장 중요한 곳으로, 광석의 채취뿐만 아니라 이를 제련해 수철과 정철을 만들어 상공 혹은 별공의 형태로 국가에 공납하였다. 철소에서는 소리所吏, 장인匠人, 철소민鐵所民이 각기 역할을 분담하여 철을 채굴하고 제련하였다. 소리는 철 채굴과 제련, 공납 등 전반적인 사안을 감독하였으며, 장인은 철 제련에 필요한 주요한 기술을, 철소민들은 채광, 운반 등 모든 잡역을 담당했다. 따라서 철소에는 장인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소민들의 노역이 필요했다. 조선 시대의 경우 철 생산에서 장인과 일반민의 비율이 1대 10 정도인 것으로 보아 고려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정종 대의 기록에 의하면 정부는 각 군현에서 금 10량, 은 2근, 구리 50근, 철 200근을 별공으로 수취하였다. 철의 공물이 금의 320배, 은의 100배, 구리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상공常貢도 이와 비슷한 비율로 수취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 정부는 철소에서 상공의 형태로 소속 군현의 공물과 더불어 공납하게 하고, 또한 별공의 형태로 직접 중앙에 직납하게 했다. 철의 생산은 채굴·제련 과정에서 힘든 노역이 수반되므로 철소민들의 생활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철소민들은 노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에서 유리遊離하여 도주하거나 아니 면 군현으로 승격되기를 희망했다. 1255년(고종 42)에 정부가 몽골군을 방어한 공로에 대한 보답으로 다인철소多仁鐵所를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시킨 것은 소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대단한 특혜였음을 보여 준다. 몽골의 침략이 장기간 지속되던 고종 40년대는 고려민이 몽골에 투항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었던 만큼 정부로서는 충주 지역을 방어한 다인철소민을 크게 치하하여 민심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어 익안현으로 승격시킨 것으로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는 소민의 유망流亡으로 인한 소의 해체보다는 이들을 군현민으로 승격시키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는 고려 사회가 역役을 수취하는 단계를 벗어나 공물을 수취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중한 철의 수취는 철소민을 유망하게 하여 결국 철소는 해체되었고 철소의 공장工匠들은 철을 전문적으로 제련하여 조제하는 독립적인 수공업자로 바뀌었다. 정부는 소가 해체되자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광산물을 주로 농한기의 백성이나 군인을 차출하여 채광·제련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농민의 부담이 커지게 되자 광산물은 더 이상 개발되지 못하였다. 즉 지방관은 새로운 광물이 발견되더라도 부역을 꺼린 지역 농민들의 집단 반발로 중앙에 제대로 알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소민이나 농민의 노역을 징발하여 생산하는 고려 시대의 철 생산은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조선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철이 전국적으로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철광산이 집중되어 있는 곳은 황해도 은율·재령 일대로서 이곳에는 우봉철소가 있었다. 충청도 지역에는 충주의 다인철소, 옥천군의 어모소, 서산군의 위포소, 회덕현의 침이소, 이산현(논산시 노성면)의 등수소와 저정소, 금산군의 횡천소가 있었다. 전라도 지역에는 전주의 양량소, 무안현의 수다소, 나주목 남평현의 운곡소가 있었으며, 경상도에는 산음현(산청군)의 송곡소,강원도에는 원주목의 금마곡소, 정선군의 개야항소, 금화현의 탄항소와 마현소의 철소가 설치되었다. 이 들 철소 중 가장 중요시 된 지역은 우봉철소와 다인철소였다. 우봉철소는 개경 가까이에 있다는 이점이 크게 작용했으며, 다인철소의 경우 수백 호가 넘는 대규모의 광산 마을로서 조선 시대까지 철 생산이 활발하였다. (이정신) |
| 참고문헌 | 조선기술발전사 3-고려편-(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4), 고려전기 수공업 연구(서성호,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고려 무신집권기 철의 수취와 명학소민의 봉기(김기섭, 한국중세사연구 15, 한국중세사학회, 2003), 고대도시유적 중원경-유적편-(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2010), 고려시대 특수행정구역 소 연구(이정신, 혜안, 2014) |
| 구분 | 용어 |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생산유적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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