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광주 조선백자 요지(廣州朝鮮白磁窯址)_자기
설명 사적(광주 조선백자 요지). 경기도 광주시 일대에 위치한다. 조선 건국 이후 조선 왕실에서 소용되는 그릇은 금·은기의 부족과 중국 자기의 영향으로 자기가 선호되었다. 자기에 대한 수요의 증가와 원활한 확보를 위해 지방 토산물로서 도자기를 조달해 오던 공납 체제는 사옹원司饔院의 관할 하에 왕실 자기를 전담해서 제작하는 관요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사옹원은 왕의 음식과 궐 내 연회식 공급을 관장하던 곳으로 1467년경 경기도 광주에 사옹원의 분원으로서 왕실 전용 가마를 설치하였으며, 왕실과 중앙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와 공납 자기의 제작을 감독하였다. 경기도 광주에 분원을 설치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백자의 원료인 양질의 태토가 생산되고, 주변의 하천으로부터 풍부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강 수로를 통해 관요에서 제작된 자기의 운반이 용이하고, 삼림이 우거져 땔나무가 풍부했는데, 특히 광주군 6개면은 왕실의 땔나무 공급처로서 관리되던 지역이었다. 한편, 광주는 경상도의 고령 1곳, 상주 2곳과 함께 『세종실록』 「지리지」에 상품 자기소上品磁器所가 있었던 곳으로 지리적, 역사적인 장점을 지닌 곳이었다. 이에 조선 왕실에서는 1467년경 경기도 광주에 분원(이하 관요)을 설치하고 1883년 관요가 민영화될 때까지 약 420년간 왕실과 중앙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를 전담해서 생산하였다. 관요는 필요한 땔나무의 조달을 위하여 숲이 울창한 지역을 조정으로부터 분할 받았다. 관요에서 필요로 하는 땔나무 조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정도를 주기로 광주 내의 수목이 무성한 곳을 찾아 가마를 이전하였다. 땔나무를 찾아 관요를 설치·이전한 흔적들이 광주시 전역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숙종 대부터 화전민이 유입되고, 점차 그 수가 증가하면서 화전으로 개간되어 황폐화되는 지역이 넓어졌으며, 이러한 양상은 18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이에 1752년 현재의 남종면 분원리에 분원을 고정시키고, 강원도 등지에서 땔나무를 운반해 운영하는 형태로 1883년까지 지속되었다. 조선 시대 왕실과 중앙 관청에 약 420년간 백자를 공급해 온 관요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1981년 처음으로 광주시 전역에 대한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185곳에서 가마가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마의 위치·분포 범위·유물의 특징·대략적인 조업 시기 등이 밝혀졌다. 이 가운데 76개소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관리되고 있다. 1992년에는 관음리 등 몇 지역을 대상으로 가마의 구체적인 범위와 현상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광주시 전역의 관요 분포 상황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가마 90여 기를 새롭게 확인하였다. 그리고 1999년과 2004년 조사에서도 새로운 가마가 찾아져 그 수가 320여 개에 이르며, 현재도 계속해서 새로운 가마가 발견되고 있다. 1964~1965년 도마리 1호에 대한 발굴이 처음 이루어진 이래로 1985~1986년 중부 고속 도로 구간에 포함되어 번천리 5호와 선동리 2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선동리 2호에서는 1640~1648년에 이르는 간지가 출토되어 관요가 땔나무를 찾아 이설되었음을 고고학적 자료로 증명하였다. 이 외에도 1992년에는 우산리 9호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져, 가마와 양질의 백자가 확인되었고 관요 연구가 활발해 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우산리 2호·3호·17호, 건업리 2호에서도 관요 설치 이전의 광주 요업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었고, 2001~2002년에는 조선 시대 마지막 관요인 분원리가 조사됨으로써 가마와 함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걸친 다양한 백자와 청화 백자가 출토되어 민영화 이후까지의 요업 양상을 알수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4년 이후부터는 경기도 광주 지역에 대한 가마 유적 조사가 활발해져 송정동 5· 6호를 시작으로 신대리 18호 등이 조사되어 조선 중기 관요 백자 연구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한편 광주에 인접한 용인 왕산리에서는 관요에서만 출토되는 간지명 백자가 출토되어 광주 관요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2010년대 사적지 보존·정비를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조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곤지암리, 관음리, 대쌍령리, 목현동, 무갑리, 상림리 가마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가 확보되어 조선 관요 백자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관요에서 제작된 백자 등이 서울 지역 소비 유적에서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이들 백자와의 비교를 통해 조선 시대의 사회·문화·경제상을 밝히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며, 지방 백자 연구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해 주어 국내 도자사 연구에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경중)
참고문헌 광주의 조선도자요지(조선관요박물관, 2004), 조선관요와 지방백자(세계도자기엑스포, 2007)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생산유적편)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광주 조선백자 요지(廣州朝鮮白磁窯址)_자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 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