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사라리 유적(慶州 舍羅里 遺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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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사라리 578-3번지 일대에 있는 청동기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집자리와 분묘가 분포하는 유적이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경주에서 영천방향으로 길게 건천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진 곡간평야의 중앙부 동측 산지의 말단 구릉지에 해당된다. 따라서 경주에서 영천방향으로 나가는 교통의 요지 중앙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유적은 사라리 마을 서쪽의 해발 40~100m의 낮은 4개의 능선으로 구성되었고 지표조사 결과 특히 삼국시대 이전 분묘가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져 사라리 고분군1이라 불리고 있다. 주변에는 경주시의 중심지역을 제외한 주변에서 가장 대규모인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을 비롯하여 사라리 고분군2, 아화리 고분군(阿火里古墳群), 도계리 고분군(道溪里古墳群), 심곡리 고분군(深谷里古墳群) 등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일부가 1995년 공장신축으로 훼손되어 시굴조사되었고, 동년 11월부터 5개월에 걸쳐 4,000여 평이 발굴되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의 장방형집자리 5동, 원삼국시대의 널무덤(木棺墓) 7기, 삼국시대의 덧널무덤(木槨墓) 67기,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43기, 돌덧널무덤(石槨墓) 12기, 독무덤(甕棺墓) 2기 등 136기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경주지역의 대표적인 원삼국시대의 널무덤으로 알려진 130호 무덤은 풍부한 부장품, 구조의 특이성 등으로 유명하다. 발굴된 유구 가운데 돌무지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의 보고서가 간행되어 유적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조사된 무덤은 모두 봉토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돌무지덧널무덤의 경우 덧널의 상부에 2~3겹의 얕은 돌무지를 가진 것이며, 둘레돌(護石)은 확인되지 않으나 반원상의 무덤도랑(周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수이며 이 경우 도랑의 내부에 기둥구멍 등의 흔적이 발견되는 점등으로 미루어 원래는 봉토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돌무지무덤의 상부 돌무지에 사용된 돌은 경주시내에서 확인되는 돌무지덧널무덤과 같이 냇돌(川石)을 사용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깬돌(割石)을 사용한 특징이 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분형에 따라 한사람무덤(單葬墳)과 두사람무덤(兩葬墳)으로 구분되며 묘곽의 형식에 따라 외덧널식(單槨式 : Ⅰ식)과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구분한 형식(主副槨式)으로 구분되고, 후자는 다시 ??日??자형으로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배치한 형식(Ⅱ식)과 ??凸??자형으로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배치한 형식(Ⅲ식)으로 나누어진다.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구분한 형식은 으뜸덧널의 바닥이 딸린덧널의 바닥보다 깊은 특징이 있다. 한사람무덤은 모든 묘곽형식에 사용되었고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구분한 형식(Ⅱ?Ⅲ식)은 등고선의 주축방향과 나란하게 묘곽을 배치하였으나 Ⅰ식은 등고선의 주축방향과 엇갈리게 배치한 특징이 있다. 두사람무덤은 Ⅰ식과 Ⅱ식도 사용되었지만 Ⅲ식이 많아 두사람무덤의 출현과 Ⅲ식이 관련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 두사람무덤의 경우 모두 하나의 무덤을 먼저 축조하고 나중에 친연관계에 따라 추가한 것으로 아래의 것이 먼저 축조되었고, 위의 것이 나중에 축조되어 영남지방의 다른 지역 무덤축조양상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돌무지덧널무덤의 묘곽 형식 가운데 Ⅲ식이 가장 많이 조사되었다. 이것은 경주와 그 주변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들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중소형 돌무지덧널무덤의 전형적인 묘곽배치 형식임을 알려준다. 돌덧널무덤은 비교적 무덤구덩이를 넓게 파고 아래에서부터 가로쌓기를 하여 축조한 것과 비교적 좁게 파고 아래측은 세워쌓기를, 위는 가로쌓기를 한 것으로 나누어지며 전자의 경우 몇 겹이 되게 채우듯이 쌓은 특징이 있다. 돌무지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굽다리접시?뚜껑접시?목긴항아리 등의 신라토기, 재갈?말띠드리개?말띠꾸미개 등의 마구류, 쇠살촉?철창?물미?큰칼 등의 무기류, 쇠도끼?쇠낫?손칼?U자형삽날 등의 농공구, 판상쇠도끼?미늘쇠 등의 의기류, 유리구슬목걸이 등이 있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 36호와 57호에서는 말그림이 그려진 굽다리목긴항아리가 발견되었고, 아직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은 덧널무덤에서는 집모양토기 등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출토된 토기류를 비롯한 유물들의 특징으로 보아 이곳에 돌무지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 축조된 것은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로 판단된다. 그리고 무덤의 규모 등과 함께 고려할 때, 사라리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널무덤단계에는 130호 무덤을 축조한 것과 같이 경주권에서 최고라 불릴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점 쇠락하여 돌무지덧널무덤을 축조하는 단계에는 경주의 서부인 건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중심고분군인 금척리 고분군 축조집단의 하위집단으로 기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보고서가 모두 발간되면 널무덤단계부터 이 돌무지덧널무덤 단계에 이르기까지 무덤의 변천 양상, 유물의 변화양상 등이 밝혀져 신라고분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
| 참고문헌 | 慶州舍羅里遺蹟Ⅰ-積石木槨墓?石槨墓-(嶺南文化財硏究院, 1999), 慶州 舍羅里遺蹟 130號墓에 대하여(朴升圭,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학술회의 발표요지, 1997) |
| 구분 | 유적 |
| 사전명 | 한국고고학사전(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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