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관북리출토목간(扶餘官北里出土木簡)
- 시대
- 백제
- 연대
- 538~663년(사비기(泗?期))
-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부여 관북리유적(官北里遺蹟 : 사적 428호)은 백제 사비시대의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되는 유적으로서, 1982년부터 1992년까지 7차에 걸쳐 충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2001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연차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사결과, 백제시대의 연못, 도로, 하수도, 축대, 건물지를 비롯하여, 대규모 공방(工房) 관련 시설, 수혈유구(竪穴遺構), 곡물이나 과일 등을 저장했던 창고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근래에 조사된 공방, 창고, 수혈주거지 등은 조사지역이 백제시대 왕궁이나 관청의 부속시설이 위치했던 지역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정교한 호안석축(護岸石築)을 갖춘 연지(蓮池)의 전체 규모는 동서 10m, 남북 6.2m, 깊이 0.75~1.15m이며, 내부의 퇴적층은 크게 하부의 황갈색 토층과 흑회색 점질토층, 그리고 상부의 흑갈색 토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백제지역에서는 처음로 출토된 목간은 연지 내부에 퇴적된 세 토층 모두에서 확인되었으며, 특히 상부의 두 층에서는 목간뿐만 아니라 다량의 백제토기와 기와편 외 목제 인형 다리, 바구니 등 유기유물(有機遺物)들도 상당량 수습되었다. 연지의 폐기시점을 알 수 있는 단서로는 상층의 흑갈색 토층에서 수습된 개원통보(開元通寶)가 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7세기 전·중반의 어느 시점에서 연지가 폐기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판독문/해석문
판독문 | 국립부여박물관 |
참고문헌
단행본 | 2004 |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2004, 『韓國의 古代木簡』 |
단행본 | 2003 | 국립부여박물관, 2003, 『百濟의 文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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