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출토목간(彌勒寺址出土木簡)
- 시대
- 백제
- 연대
- 미상
- 유형
- 목간
- 크기
- (1) 길이 17.5cm, 너비 2.5~5.0cm (2) 길이 8.0cm, 너비 2.9~3.2cm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900 국립전주박물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국립익산박물관
- 서체
- 미상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 : 사적 150호)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현 미륵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백제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로, 백제 무왕(武王) 2년(60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미륵사에 관한 기록으로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보이는 창건기록 설화가 가장 오래된 것이며, 『조선불교총서(朝鮮佛敎叢書)』에 실린 고려 초 승려 혜거국사비문(惠居國師碑文)에 의하면 후백제 시기(922년)에 미륵사 개탑(改塔) 기사가 실려있다. 한편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미륵사 석탑이 동방에서 가장 큰 석탑이라고 기술되어 있고, 영조(英祖) 때 강후진(康候晉)이 편찬한 『와유록(臥遊錄)』에는 폐허가 된 후의 미륵사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이상의 기록으로 보아 미륵사는 백제 무왕대에 창건되어 고려를 거쳐 조선 중기인 17세기 전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륵사에 대한 조사는 1970년대 원광대학교의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1980년부터 1994년까지 15년간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되었다.미륵사의 가람은 중원(中院)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원(東院)과 서원(西院)을 둔 삼원병렬식(三院竝列式)의 구조로서, 각 원에는 중문(中門), 탑(塔), 금당(金堂)을 남북으로 배치하고 중원 북쪽에는 대규모 강당(講堂)을 설치하였다. 또한 중원에 목탑(木塔)을, 동·서원에는 각각 석탑(石塔)을 둔 삼금당(三金堂) 삼탑식(三塔式)의 가람배치는 창건연기(創建緣起)의 ‘᠁ 당(堂), 탑(塔), 낭부(廊廡), 삼소창지(三所創之)᠁’란 기록과 일치하고 있는 부분이다.미륵사지에서는 주류를 이루는 토기, 기와류와 함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미륵사(彌勒寺), 금마저관(金馬渚官), 묘봉원(妙奉院), 연우사년(延祐四年), 만력십오년(萬曆十五年)’ 등의 명문기와는 미륵사가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에 폐사되기까지 지속적으로 번와(燔瓦)를 통해 개보수(改補修)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특히 목간 2점은 사역(寺域) 남측에 대규모로 조성된 동·서 연못 가운데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서쪽 연못 내부의 개흙층에서 수습되었다.그 중 네 면에 묵사가 남아있는 목간은 연못의 남동모서리 부근의 지표하 260cm에서 통일신라시대 인골(人骨) 2구와 함께 출토되었고, 양면에 묵흔이 있는 목간은 사면 묵서목간이 수습된 곳에서 북쪽으로 25m 떨어진 지점[지표하 230cm]에서 출토되었다. 두 목간은 모두 단면형태는 사각형이며 상·하단이 파손된 상태였다. 네 면에 묵서가 있는 목간편의 경우, 세 면의 묵서방향은 동일하나 나머지 한 면은 반대방향으로 묵서된 것이 특징이다.
판독문/해석문
판독문 | 부여문화유산연구소 |
참고문헌
단행본 | 2004 | 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2004, 『韓國의 古代木簡』 |
단행본 | 1996 |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1996, 『彌勒寺』遺蹟發掘調査報告書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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