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당계회도
- 영문명
- Dokseodang gyehoedo (Gathering of Officials at Dokseodang Study)
- 제작시기
- 1531년(중종 26)
- 재질
- 비단에 수묵채색
- 규격
- 전체: 187.2×72.4cm, 화면: 91.4×62.5cm
- 지정종목
- 보물
- 지정일
- 2023-04-28
-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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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국문)
1531년(중종 26) 독서당(讀書堂)에서 독서와 휴가를 부여받은 관료들이 만남을 기념하여 제작한 계회도이다. 특이한 것은 함께 같은 시기에 휴가를 보낸 관료들이 아니라 각기 휴가를 받은 시기는 다르지만, 독서당을 다녀간 이력이 있는 관료들끼리 가진 모임이라는 사실이다. 국가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여 학식을 키울 수 있도록 한 제도를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한다. 조선 전기에는 관료들 간의 사적인 친목을 나누기 위한 회합이 유행하였고, 그런 모임을 ‘계회(契會)’라 불렀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계회일 경우에는 만남의 장면을 그린 계회도를 제작하여 참석자들의 수만큼 나누어 갖는 것이 관행이었다. 쉽게 말하면, 사진기가 없던 시대에 기념사진의 기능을 한 그림이 계회도인 셈이다. 즉, 계회를 통한 만남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추억의 근거로 삼자는 것이 계회도 제작의 취지였다. 조선 전기의 계회도는 두루마리로 된 족자(簇子) 형식에 위로부터 표제(表題)와 그림, 참석자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좌목(座目) 등 3단 구성을 취한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독서당계회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계회도는 독서당 주변의 실제 경관을 그린 것으로 실경산수화 계열의 계회도에 속한다. <독서당계회도>의 좌목에 적힌 이들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1531년(중종 26)에 계회를 갖고 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약 490년 전 한강 동호(東湖) 일대의 경관을 그린 실경산수화 형식의 계회도라는 점은 회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림은 독서당의 모습보다 독서당이 있는 언덕과 배산, 그리고 동호일대 한강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옮겨 그렸다. 계회가 배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넓은 경관을 담은 그림으로 그려야 했을 것이다. 독서당은 1515년(중종10)부터 한강의 동호(東湖) 변에 있던 월송암(月松庵) 서쪽 기슭에 터를 정하여 짓기 시작하여 1517(중종12)년 봄에 준공되었다. 이때 지어진 독서당의 위치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국여지비고에 도성(都城) 동남쪽 5리에서 10리 정도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서울시 성동구 한남동에 위치한 극동 그린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독서당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복원되지 않았다. 여기에 소개하는 <독서당계회도>는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가상의 시점인 부감시(俯瞰視)를 적용하여 그렸다. 따라서 독서당 뒤편에 자리 잡은 응봉(鷹峯)은 물론 그 뒤편에 원경으로 펼쳐진 삼각산까지 보일 정도로 넓은 공간 안에 조망된 두모포(豆毛浦)와 독서당 주변의 경관을 그렸다. 화면 상단 가운데에 우뚝 솟아오른 산은 남산의 자락으로 과거에는 종남산(終南山), 지금은 매봉산(응봉鷹峯)으로 불리는 봉우리이다. 그 아래에 지붕을 드러내어 건물을 암시한 곳이 독서당으로 추정된다. 그 아래쪽인 한강변은 당시 나루터가 있던 두모포 일대이며, 지금의 동호대교가 연결되는 지점에 해당한다. 응봉 뒤편으로는 멀리 펼쳐진 삼각산까지 보일 정도로 넓은 공간 안에 조망한 두모포와 독서당 주변의 경관이 펼쳐져 있다. 1531년 작 <독서당계회도>는 독서당이 바라보이는 한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며 선상(船上)에서 이루어진 계회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예컨대 독서당이나 특정 건물에서 계회를 가졌다면, 작게라도 그 장면을 그렸을 것이다. 이 그림의 경우에는 한강에 떠 있는 배 위에 점경인물을 그려 계회의 장면을 암시하였다. 배는 2척이 떠 있는데, 하나는 지붕을 씌운 선상에서 관리들이 대화를 나누며 주찬을 즐기는 모습이다. 긴 배의 앞뒤에는 사공이 각각 노를 젓고 있다. 계회가 열리는 배 옆에는 술 단지를 실은 배가 따라가고 있다. 술이 떨어질 경우 바로 공급하기 위해 움직이는 배이다.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모래섬은 아마도 퇴적하는 모래가 이룬 섬으로 추정되는데, 동호에 자리 잡은 저자도와 관련이 있는 섬으로 추정된다. 섬 주위에는 배를 정박하고 강에 던진 그물을 거두어들이는 어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물을 던지는 배와 조용하게 지나가는 돗단배 등 한강 동호 일대의 한적한 풍경들이 화폭에 부분적으로 그려져 있다. <독서당계회도>에는 16세기 전반기의 산수화에 등장하는 이상화된 경물들은 배제하였고, 한강과 원산(遠山)의 수평적인 배치, 좌우 대칭형의 구도, 단계적인 원근 표현 그리고 합리적인 시점의 적용 등 실경을 재현한 특징이 뚜렷하다. 또한 당시 유행하던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의 편파구도(偏頗構圖)가 아닌 대칭 구도를 택한 것은 강변의 경관을 조망할 때 시야에 들어오는 수평적인 시점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림의 세부를 보면, 독서당 아래의 한강과 인접한 두모포 주변에는 언덕이 들쭉날쭉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그 위에 세도가들이 지은 누정(樓亭)들이 들어서 있고, 강변으로부터 독서당으로 이르는 길이 묘사되어 있다. 이 <독서당계회도>는 현존하는 계회도 가운데 실경을 그린 사례로는 제작 시기가 가장 앞선 작품이며, 16세기 중엽의 실경산수화로 손색이 없는 현장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그림 아래에 기록한 좌목에는 계회에 참석한 관료 12인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다. 한 사람마다 4행에 맞추어 인적사항을 기록하였다. 먼저 첫 행에는 호(號), 이름, 자(字), 본관, 생년과 사가독서에 참여한 연도순으로 정보를 기록하였고, 두 번째 행에는 작은 글씨로 과거시험 합격연도, 세 번째 행에는 계회 당시의 품계와 관직을 기록하였으며, 마지막 행에는 아버지의 품계와 관직 등을 기재하였다. 좌목을 토대로 각 인물의 생졸년, 사가독서한 시기, 1531년 계회를 갖던 당시의 관직과 연령 순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장옥(張玉, 1493~?), 1516년(중종 11) / 24세, 성균관사성 / 39세 2. 홍서주(洪叙疇, 1499~1546), 1523년(중종 18) / 25세, 광흥창수 / 33세 3. 허자(許磁, 1496~1551), 1524년(중종 19) / 29세, 양근군수 / 36세 4. 임백령(林百齡, 1498~1546), 1520년(중종 15) / 23세, 영광군수 / 34세 5. 송인수(宋麟壽, 1499~1547), 1524년(중종 19) / 26세, 춘추관편수관 / 33세 6. 송순(宋純, 1493~1582), 1520년(중종 15) / 28세, 봉상시첨정 / 39세 7. 주세붕(周世鵬, 1495~1554), 1524년(중종 19) / 30세, 사간원헌납 / 37세 8. 이림(李霖, 1501~1546), 1528년(중종 23) / 28세, 예조정랑 / 31세 9. 허항(許沆, 1497~1537), 1528년(중종 23) / 32세, 사간원정언 / 35세 10. 신석간(申石澗, 1493~?), 1530년(중종 25) / 38세, 이조정랑 / 39세 11. 엄흔(嚴昕, 1508~1543), 1530년(중종 25) / 23세, 이조좌랑 / 24세 12. 최연(崔演, 1503~1549), 1530년(중종 25) / 28세, 홍문관부수찬 / 29세 특징적인 것은 이 계회에 참석한 이들이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간 시기가 20대 초중반에 해당할 정도로 매우 빨랐고, 사가독서의 휴가를 받은 시기도 20대 중후반에 해당할 정도로 젊은 시기라는 점이다. 이들이 사가독서를 받은 평균 나이는 27, 28세인데, 사가독서가 젊고 유능한 관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계회를 갖고 계회도를 제작한 시기는 1531년(중종 26)이다. 이는 이들의 관직 임명 시기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허항의 경우 계회 당시의 관직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인데, 1531년 3월 17일과 9월 2일에 각각 임명받은 사실이 『중종실록』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면, 계회가 열린 시기는 1531년에 해당하며, 계회의 성격은 과거에 사가독서를 받아 독서당에서 공부했던 선후배 관료들의 친목 모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531년을 기준으로 약 15년 전부터 독서당을 거쳐 간 인물들 가운데 특별한 친분을 공유한 12명이 모여 계회를 가진 것이다. 계회 당시 24세의 엄흔, 29세의 최연을 제외한 나머지 10인은 모두 30대의 나이에 해당하는 비교적 젊은 관료들이다. 계회에 참석한 12인은 16세기 중후반기에 활동한 이름난 관료들이었으며, 사가독서를 매개로 하여 이들의 친목과 유대관계가 형성되었다. 조선 전기 계회도 가운데 당시의 시대양식을 반영하면서도 실경산수화로서의 완성도가 높은 매우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좌목을 보면, 다른 계회도에 기재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먼저 호와 이름을 적었고, 다음으로 자와 본관, 생년을 표시하였다. 그 뒤에 사가를 받은 해의 간지와 계절을 표기하였다. 이 부분은 이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사가독서를 한 관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독서당에서 사가독서를 보낸 이력을 가진 관료들끼리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본적인 인적사항 외에도 사마시와 문과의 과거사항, 그리고 현직을 기재하였고 행을 바꾸어 부친의 품계와 관직, 이름도 기록하였다. 글: 윤진영
- 담당부서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문의 : 042-860-91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