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년 연행도첩
해제(국문)
《경진년 연행도첩(庚辰年 燕行圖帖)》은 1760년 동지사행(冬至使行) 때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어명을 받들어 제작한 서화첩이다. 처음 소개된 이후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이라는 제목으로 지칭되어 오다가 2020년 보물로 지정되면서 ‘경진년 연행도첩’이라는 공식 명칭이 부여되었다. 각 장의 양면에 글씨와 그림이 배치된 총 21장의 서화첩으로 영조어필(英祖御筆)과 발문(跋文) 5편, 실경도(實景圖) 7폭, 배반도(排班圖) 3폭이 실려 있다. 청록색 능화지를 사용한 앞뒤 표지는 세로 52.9㎝, 가로 32.0㎝이다. 유전 과정에서 능화지 문양의 요철이 뭉개지고 오염되었다. 제작 당시의 장황이 보존된 유물이고 글씨와 그림의 바탕은 모두 종이이다. 내지와 그림 및 글씨 외곽의 회장지는 금박이 섞인 냉은지에 청색 물감을 칠해 썼는데, 가장자리가 닳으면서 물감이 벗겨지기도 했다. 충식에 의한 구멍이 확인되며, 특히 하단 중앙부의 훼손이 심하다. 하지만 그림과 글씨 부분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그 크기는 세로 46.2㎝, 가로 55.2㎝ 내외이다. 조선시대 ‘연행(燕行)’은 사대교린(事大交隣)에 입각해 펼친 외교정책에 따라 명ㆍ청대 수도인 북경에 사절단을 파견한 외교 의례를 일컫는다. 동지사행처럼 정기적으로 행해진 절행(節行)과 부정기적 별행(別行)으로 나뉘며, 매년 수차례,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면서 양국 간 인적ㆍ물적 교류의 장이 되었다. 연행 관련 자료는 관찬 사서와 외교문서 외에 사절단 개인이 저술한 연행록(燕行錄)도 많이 전한다. 그런데 이미 수백 종이 파악된 연행록의 규모에 비해 연행의 실상을 담은 ‘연행도(燕行圖)’ 혹은 ‘사행기록화(使行記錄畵)’는 소량에 불과하다. 따라서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경진년 연행도첩》은 학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의미가 각별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경진년 동지사 일행은 1760년 11월 2일 한양을 출발해 12월 27일 북경에 도착했다. 북경에서 40일간 체류한 사절단은 이듬해 2월 9일 귀로에 올랐고 4월 6일 귀경함으로써 총 154일 간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사절단을 이끈 삼사(三使)는 정사 홍계희(洪啟禧, 1703~1771), 부사 조영진(趙榮進, 1703~1775), 서장관 이휘중(李徽中, 1715~1786)이었다. 『승정원일기』 1760년 11월 2일조 기사는 영조가 입시한 삼사신(三使臣)에게 특명을 내린 사실을 전한다. 즉 조부인 현종(顯宗, 재위 1659~1674)의 탄강 120주년을 앞둔 시점에 영조가 병자호란 직후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와 봉림대군(鳳林大君, 1649~1659, 훗날 효종)의 유폐처이자 현종이 태어난 장소인 심양관을 그려오라고 지시한 것이다. 한편 서장관 이휘중의 자제군관으로 함께 연행한 이상봉(李商鳳, 1733~1801)이 쓴 『북원록(北轅錄)』을 통해서 당시 도화서 화원 이필성(李必成)이 동행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경진년 연행도첩》의 그림들은 사절단의 일원으로 전체 여정을 함께 한 이필성이 그렸을 것이다. 이 서화첩은 영조어필ㆍ심관구지도(瀋館舊址圖)ㆍ심관구지도 발문ㆍ문묘도(文廟圖)ㆍ이륜당도(彝倫堂圖)ㆍ선사묘전내급동서무위차지도(先師廟殿內及東西廡位次之圖)ㆍ숭성사정위급배향위차지도(崇聖祠正位及配享位次之圖)ㆍ문묘도 발문ㆍ석고배치도(石鼓排置圖)ㆍ발문ㆍ역대제왕묘도(歷代帝王廟圖)ㆍ역대제왕묘위차지도(歷代帝王廟位次之圖)ㆍ역대제왕묘도 발문ㆍ산해관내도(山海關內圖)ㆍ산해관외도(山海關外圖)ㆍ산해관도 발문의 순으로 장첩되어 있다. 사절단이 왕복 여정에서 거치거나 머문 심양, 북경, 산해관 등지에 자리한 사적(史蹟)과 성지(城池)의 경관을 시각화했고, 짝을 이루는 발문을 통해 그림의 이해를 돕는다. 《경진년 연행도첩》에 수록된 시각자료의 내용을 살펴보면, <영조어필>에는 심관탄강구지(瀋館誕降舊址)ㆍ제왕묘위차(帝王廟位次)ㆍ태학대성전명륜당석고(太學大成殿明倫堂石鼓)ㆍ산해관문(山海關門) 등 네 항목이 정리되어 있다. <심관구지도>는 사절단이 방문했을 때 과거 심양관 자리에 있던 찰원(察院) 일대 경관을 담고 있다. 이어지는 <문묘도>의 문묘는 북경 국자감 동쪽에 있는 시설물로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황색 기와로 덮인 묘문(廟門)과 선사묘(先師廟) 구역에 초점을 맞췄고 뜰에 있는 6좌의 비정(碑亭),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등을 묘사했는데, 일부 시설은 생략되었다. <이륜당도>는 북경 국자감 내 이륜당, 즉 명륜당(明倫堂)을 클로즈업한 것이다. 1784년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1795)의 명으로 당 앞에 벽옹(辟雍)이 건립되기 전 이륜당의 모습이다. 건물 앞에 설치된 해시계와 마당의 괴목(槐木), 울창한 수림까지 그려 현장감을 살렸다. 이어서 2폭의 배반도가 실려 있다. <선사묘전내급동서무위차지도>는 선사묘전 에 봉안한 공자와 제자들의 신주, 양무 안에 있는 역대 선현과 선유의 신주를 도해한 것이다. <숭성사정위급배향위차지도>에는 공자의 5대 선조의 가묘인 숭성사의 전각 내부를 도해하였다. <석고배치도>에는 문묘의 묘문(廟門) 좌우, 극문(戟門) 동서에 5점씩 배치한 주대(周代)의 석고, 그리고 석고문음훈비(石鼓文音訓碑)를 묘사하였다. 민간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손상된 제육고(第六鼓)는 여타 석고와 다른 모양으로 그려 구별하였다. <역대제왕묘도>에는 삼황오제와 역대제왕의 신위를 봉안한 경덕숭성전(景德崇聖殿)을 중심으로 배전(配殿)과 출입문, 비정(碑亭), 종루(鐘樓) 등 여러 시설물이 그려져 있는데, 실제 현장에 부합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 뒤를 잇는 <역대제왕묘위차지도>는 목판인본으로 다음 장의 발문에 역관 변헌(邊憲)이 역대제왕묘 관리인에게 얻어와 첨부했다고 밝혀 놓았다. <산해관내도>와 <산해관외도>, 그리고 발문이 서화첩의 말미를 장식한다. 산해관은 중국 만리장성 동쪽 관문을 가리킨다. 발문에 적힌 대로 산해관성의 전경(全景)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성 안팎에서 특정 구역에 초점을 맞춰 묘사하였다. <산해관내도>는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편액이 걸린 동문 성루(城樓)와 가옥이 밀집된 성안 경치를 그렸다. <산해관외도>는 산해관 외곽에 자리한 산악을 끌어당기고 동문 밖 호성하(護城河)와 성루, 훼손된 성벽 등을 묘사한 실경산수화이다. 이상 《경진년 연행도첩》에 실린 그림들은 화면의 구도와 표현법에 따라 궁궐도 유형과 실경산수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장면에 따라 이동시점형 부감법(俯瞰法)과 평행사선형 투시도법을 선별적으로 운용하였다. 건물과 성곽 묘사에 일정한 굵기의 철선묘를 구사한 계화(界畵) 솜씨가 뛰어나며 양질의 채색이 사용되었다. 화원 이필성이 왕명을 받들어 제작한 작품답게 궁중회화의 전통에 입각해 엄정한 필치를 적용한 것이다. 요컨대 《경진년 연행도첩》은 1760~1761년 동지사행과 관련해 궁중에서 주문, 제작한 유일한 시각자료이다. 또한 제작경위가 분명하고, 주문자와 화가 같은 인적 주체도 명확하다. 더욱이 그림과 글씨, 장황 등 제작 당시의 원형이 보존된 귀한 유물이자 18세기 중반 궁중회화의 특징과 수준을 잘 보여주는 회화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글: 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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