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릉
- 왕릉명
- 현릉
- 능주명
- 제5대 문종·현덕왕후
- 왕릉위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6-3
- 조성연대
- 1441년 세자빈묘 조성, 1450년 소릉(昭陵) 조성, 1452년 문종 현릉 조성, 1457년 소릉 폐릉, 1513년 왕후릉으로 복위 후 현릉으로 천릉
- 왕릉형태
- 동원이강릉
능의 조성
조선 제5대 국왕 문종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인 1452년(단종 즉위) 5월에 경복궁 정전에서 승하하였다. 산릉은 건원릉의 남동쪽에 조성하였고 능호는 현릉이라 하였다. 능지를 정할 때에는 수양대군, 왕보인, 김종서, 정인지 등의 대신을 비롯하여 풍수학랑관이 현지를 답사하고 정하였다. 그의 비인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이 승하하기 11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1441년(세종 23) 단종을 낳고 병이 위독해져 24세의 나이로 문종보다 먼저 승하하였는데, 안산의 소릉에 장사지냈다. 이후 단종의 복위 사건에 의해 1457년(세조 3) 추폐되었다가 1512년(중종 7) 복위되어 그 다음해 봄, 문종이 묻혀 있는 현릉의 왼쪽 산줄기 언덕에 천장하였다. 사후 72년 만에 왕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동원이강릉을 조성한 후에는 정자각을 두 능의 중간 지점으로 이건하였다. 이 때 양릉 사이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있었는데, 능역을 시작하자 저절로 말라 죽어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능주 소개
문종(文宗, 1414~1452)은 조선의 4대 왕 세종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장자로 1414년(태종 14) 10월 3일에 태어났다. 휘는 ‘향(珦)’이며, 자는 ‘휘지(輝之)’이다. 1421년(세종 3) 세자로 책봉받았다. 세종의 병환으로 인해, 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인 1445년부터 여러 가지 정무에 참여하는 등 세종을 보필하였다. 유학 및 천문·역법·산술 등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짧은 재위기간 동안에도 『동국병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였다. 즉위 후 군제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 제시하였는데, 3군의 12사를 5사로 줄이는 반면 병력을 증대시키고 각 병종을 5사에 골고루 배분하였다. 재위 2년 4개월 만인 1452년(문종 2) 5월 14일에 경복궁 정침에서 훙서하여, 9월 1일에 건원릉의 동남쪽에 장사하였다. 시호는 ‘흠명 인숙 광문 성효(欽明仁肅光文聖孝)’이다. 현덕왕후(顯德王后, 1418~1441) 권씨(權氏)는 영가군의 세족인 증(贈) 의정부 좌의정 권전(權專)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젊은 나이에 현덕빈으로 승하하였다. 이후에 시호를 그대로 추숭하여 ‘현덕왕후(顯德王后)’라 하고, 혼전은 ‘경희전’, 능은 ‘소릉(昭陵)’이라 하였다. 중종 연간(1513)에 소릉을 문종 능침의 좌측으로 이장하여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소릉이라는 옛 칭호를 버리고 문종 현릉과 합하여 칭하게 되었다. 문종과 현덕왕후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이 단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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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유산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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