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릉
- 왕릉명
- 유릉
- 능주명
- 제27대 순종·원비 순명효황후·계비 순정효황후
- 왕릉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 조성연대
- 1905년 순명비 유강원(裕康園), 1907년 봉릉, 1926년 천릉 및 순종 합장, 1965년 순정효황후 합장
- 왕릉형태
- 합장릉
능의 조성
유릉은 고종 홍릉과 나란히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잡고 있다. 유릉은 순종과 정비 순명효왕후, 계비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으로 홍릉과 마찬가지고 황제릉 형식으로 조성되어있다. 유릉의 조성 배경은 세분 중 가장 먼저 승하한 순정효황후의 원소인 유강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순명효황후는 1897년 황태자비가 되었으나 순종 즉위 전에 승하하여, 능호를 유강원으로 정하고 지금의 어린이 대공원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는데 1907년 순종이 즉위함에 따라 유릉이라는 능호가 내려지고 황후로 추숭하였다. 이후 1926년 순종이 승하함에 따라 순명효황후의 유릉을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 홍릉 왼쪽 언덕에 천봉해 함께 모시면서 유릉이라는 능호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1966년 순정효황후가 함께 모셔짐에 따라 동봉삼실형의 합장릉이란 체제를 지니게 되었다. 고종황제의 홍릉처럼 황제릉으로 조성되었으나, 홍릉에 비해 규모가 작은편이다. 향어로 양 옆에 놓여있는 석물은 1928년 완성되었는데 석물 제작은 아이바 히코지로(相羽彦次郞) 등 일본인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작업장에서 실제 크기의 석고 모형을 만들어 이를 석재에 그대로 옮기는 방법을 택해 전통 왕릉 석물조각 방식과는 다른 기법으로 석물을 제작하였다.
능주 소개
순종(純宗, 1874~1926)은 조선 제27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척(坧), 자는 군방(君邦), 호는 정헌(正軒)이다. 1874년 2월 창덕궁의 관물헌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탄생하였다. 탄생 다음 해 2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82년에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다.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4년 새로이 윤씨를 황태자비로 맞이 하였다. 1907년 7월에 일제의 강요와 일부 친일 정객의 매국 행위로 왕위를 물러나게 된 고종의 양위를 받아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고, 연호를 융희로 고쳤다. 영친왕을 황태자로 옹립하였고, 거처를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4년간에 걸친 순종의 재위기간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 무력강점으로 국권이 점차적으로 약해지고 있었다. 순종이 즉위한 직후인 1907년 7월 일제는 이른바 한일신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국정 전반을 일본인 통감이 간섭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정부 각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정치를 시작하였다. 내정간섭권을 탈취한 일본은 동시에 얼마 남지 않았던 한국 군대를 재정 부족이라는 구실로 강제해산시켰다. 또한 1909년 7월에는 기유각서에 의해 사법권마저 강탈했다. 일제는 1909년 7월 각의에서 ‘한일합병 실행에 관한 방침’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한국과 만주문제를 러시아와 사전협상하기 위해 이토를 만주에 파견하였다.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安重根)에 의하여 사살되자 이를 기화로 한반도 무력 강점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일제는 이러한 침략의도에 부화뇌동하는 친일 매국노 이완용·송병준·이용구(李容九) 등이 중심이 된 매국단체 일진회를 앞세워, 조선인의 원에 의하여 조선을 합병한다는 미명 하에 위협과 매수로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마침내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 당시 순종은 친일 매국 대신들 사이에서 국가 최고의 수렴자로서의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무력 앞에 종언을 고한 뒤, 순종은 황제의 위치에서 왕으로 강등되었다. 창덕궁 이왕(李王)으로 예우하고 왕위의 허호는 세습되도록 조처되었다. 폐위된 순종은 창덕궁에 거처하며 망국의 한을 달래다 1926년 4월 25일 승하하였다. 6월에 국장을 치러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유릉(裕陵)에 안장되었다. 순종의 인산례를 기해 6·10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1872~1904)는 조선 제27대 순종의 비이다. 본관은 여흥으로, 좌찬성 증 영의정 여은부원군 충문공 민태호(閔台鎬)의 딸이다. 양덕방 사제에서 태어나, 1882년 11세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안국동 별궁에서 가례를 행하였다. 1897년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으나 1904년 경운궁의 강태실에서 33세로 승하하였다. 능은 유릉(裕陵)으로 조성 당시 능호는 유강원(裕康園)이었으나 1907년 순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면서 유릉으로 추봉되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남양주 금곡으로 천봉한 후 합봉되었다. 순정효황후(順貞孝皇后, 1894~1966)는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해평으로, 해풍부원군 윤택영(尹澤榮)의 딸이다. 황태자비 민씨가 1904년에 사망하자, 1906년 12월 13세에 황태자 비로 책봉되었고, 이듬해 순종이 즉위하자 황후가 되었다. 순종의 동생 영친왕은 고종의 제7자로 황귀비 엄씨의 출생인데, 순종이 즉위하자 엄비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의 중론에 따라 황태자로 책립하였는바 당시 세론은 형제로 계통을 세움이 불가하다 하면서 황태제라 하였다. 1907년에 여학에 입학하여 황후궁에 여시강을 두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될 때 병풍 뒤에서 어전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방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므로, 황비가 이를 저지하고자 치마속에 옥새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으나, 숙부인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다. 만년에 고독과 비운을 달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 대지월이라는 법명을 얻었고, 1966년에 낙선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유릉(裕陵)에 순종과 합장되었다. 1966년 인산 날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황후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였다.
왕릉탐방
유릉(裕陵) 구조보기
왕릉살펴보기는 PC화면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담당자 : 박지영
- 문의 : 042-860-9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