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
- 왕릉명
- 홍릉
- 능주명
- 제21대 영조 원비 정성왕후
- 왕릉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475-92번지
- 조성연대
- 1757년
- 왕릉형태
- 단릉
능의 조성
정성왕후의 홍릉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권역 내에 단릉으로 조성되었다. 정성왕후가 승하했을 당시 영조는 쌍릉으로 조성할 계획을 갖고 산릉도감에 명하여 홍릉의 오른쪽을 비어놨으나 1776년 정조가 영조릉을 조성하면서 동구릉 건원릉 제2강을 장지로 결정하면서 홍릉은 오른쪽을 비워둔 채 수 백년이 흐르고 말았다. 홍릉 석물의 가장 큰 특징은 세부에 장식성이 증대되고 전체 비례에 현실감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석인상의 경우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거나 얼굴을 약간 아래로 굽어보고 있거나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무석인은 삼지창이 꽂힌 투구를 쓰고 화려한 꽃장식이 곁들여진 견갑을 착용하였으며 매듭 진 볼륨감 있는 포두가 돋보이는 모습이다. 투구의 양쪽 귀가리개는 뒤로 넘겨 끈으로 묶었는데 이러한 홍릉 무석인의 조각적 특징은 18세기 중반 능묘 조각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장명등과 망주석의 대석에 구름문양과 연지문양 등이 증가하고 네 귀퉁이 족석이 향로의 발처럼 안으로 오므라들면서 율동감 있는 형태로 조각되는 것도 이 시기에 들어와 나타난 특징이다.
능주 소개
정성왕후(貞聖王后, 1692~1757)는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원비이다. 본관은 달성이고, 달성부원군 서종제(徐宗悌)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숙종의 제4왕자인 연잉군(후의 영조)과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에 봉해졌다. 1721년(경종 1) 경종이 몸이 약하고 후사가 없던 와중 연잉군이 세제로 책봉되자 동시에 세제빈에 봉해졌으며, 1724년 영조의 즉위에 따라 왕비에 진봉되었다. 1740년(영조 16) ‘혜경(惠敬)’이라는 존호가 올려진 뒤 1752년에 ‘장신(莊愼)’, ‘강선(康宣)’ 등이 덧붙여졌다. 승하한 뒤 1772년 ‘공익(恭翼)’이 추존되었고 ‘인휘(仁徽)’, ‘소헌(昭獻)’이 추상되어 ‘혜경 장신 강선 공익 인휘 소헌(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이라는 존호가 확정되었다. 1778년(정조 2) 휘호로 ‘단목 장화(端穆章和)’가 올려졌다. 슬하에 자손은 없다. 시호는 ‘혜경 장신 강선 공익 인휘 소헌 단목 장화 정성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端穆章和貞聖王后)’이며 능호는 ‘홍릉’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에 있다.
왕릉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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