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릉
- 왕릉명
- 경릉
- 능주명
- 추존왕 덕종·소혜왕후
- 왕릉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 조성연대
- 1457년 대군묘 조성, 1471년 봉릉, 1504년 왕후릉
- 왕릉형태
- 동원이강릉
능의 조성
경릉은 조성 당시에는 의경세자가 왕위에 즉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대군묘로 조성되었다. 1457년에 염빈도감·국장도감·조묘도감의 삼도감을 설치하였다. 성종 연간에 의경 세자를 추존하면서, 시호는 ‘온문의경왕’, 묘호는 ‘의경묘’, 능호는 ‘경릉’으로 하였다. 세조는 1457년 9∼10월 두 달여 동안 헌릉과 건원릉, 과천 인덕원 동쪽 등의 묘지를 살피게 하였는데 수차례의 논의 끝에 1457년 고양현 봉현(현재의 고양시 덕양구)으로 선택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 소혜왕후도 세조의 유교에 따라 의경대왕(추존 덕종) 곁에 장사를 지냈다. 이렇게 왕과 왕후릉이 함께 모셔졌는데, 두 개의 봉분이 각각의 언덕에 배치되는 동원이강릉으로 조성되었다. 본래 왕릉과 왕후릉의 능위는 서쪽이 위에 있으나 경릉의 경우에는 왕릉이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릉으로 존호를 높이면서 석물을 배설하는 것이 의논되었는데, 석물의 수량을 줄여서 봉진하도록 하였다. 현재 덕종 능침의 석물을 살펴보면 석상, 장명등, 문석인 2구, 석양 2구, 석호 2구, 석마 2구만이 배설되어 있어, 대군묘의 형식과 큰 차이가 없다. 소혜왕후의 능침은 이와 달리 왕릉의 격에 맞게 석물이 배설되었다.
능주 소개
덕종은 세조의 장자로, 1438년(세종 20) 9월 15일에 태어났다. 추존왕으로 휘는 ‘숭(崇)’이며, 자는 ‘원명(原明)’, 이름은 ‘장(暲)’이다. 도원군에 봉해지고 세자로 책봉되었다. 1453년(단종 1)에는 승헌대부를 더하였다. 1457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왕위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시호는 ‘의경(懿敬)’이다. 1457년(세조 3)에 입주전(立主奠) 의식을 치렀으며, 대군묘 제도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1471년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는 한확의 딸로 태어나, 1455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아들인 성종이 즉위하자 인수왕대비가 되었다. 이후 ‘조선국회간왕비(朝鮮國懷簡王妃)’가 되었다. 시호는 ‘소혜(昭惠)’, 휘호(徽號)는 ‘휘숙명의(徽肅明懿)’이다. 1504년에 위독하여 은밀히 상제를 의논하기에 이르렀는데, 결국 그 해(연산군 10)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훙서하였다. 소혜왕후는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한글로 된 여성 교훈서인 『내훈(內訓)』 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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