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윤묘지명(金復尹墓誌銘)
- 시대
- 고려
- 연대
- 1149년(의종 3)
- 크기
- 세로 25.5cm, 가로 30.0cm, 글자크기 1.0cm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복윤(□復尹 : ?~1146,인종24)의 성(姓)은 불명이다. 이난영(李蘭暎)씨의 『韓國金石文追補』및 이수건씨의 『韓國中世社會史硏究』에서는 본 묘지명의 주인공을 윤지(尹知)로 파악하기도 하였으나, 묘지명의 첫머리는 ‘□復尹知寶城郡管內玉菓縣人也’라고 되어 있어 묘지의 주인공을 윤지(尹知)로 볼 경우 이름 앞의 ‘□復’이라는 두 글자를 설명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이는 ‘□復尹 知寶城郡管內 玉菓縣人也’로 끊어 읽어서 ‘□復尹’을 묘지명의 주인공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김용선은 복윤의 성을 金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고려사(高麗史)』선거지(選擧志)의 예종(睿宗) 13년(1118) 5월의 급제자 중에 김복윤(金福允)이란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의 이름 복윤(福允)이 본 묘지명의 □복윤(□復尹)과 그 발음이 같고, 또 묘지명에도 □복윤(□復尹)이 예종(睿宗) 13년에 현과(賢科)에 제1인으로 급제했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묘지명의 □복윤(□復尹)이 『고려사(高麗史)』선거지(選擧志)의 김복윤(金福允)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지만, 이름의 두 글자가 모두 다른 까닭에 혹시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복윤(□復尹 : ?~1146)은 보성군(寶城郡) 옥과현(玉菓縣;지금의 전라남도 谷城郡 玉果面) 사람으로, 아버지 순차(舜次)는 시합문지후(試閤門祗候)의 벼슬을 지냈다. 예종(睿宗) 13년(1118) 현과(賢科)에 제1등으로 급제하여, 황주목서기(黃州牧書記), 동경유수판관(東京留守判官)을 지내고 상식봉어동정(尙食奉御同正)으로 대영령(大盈令)을 역임하였다. 의종 즉위년(1146)에 별세하였는데, 묘지명의 마멸로 나이는 알 수 없다.
관련 금석문
판독문/해석문
해석문 | 김용선 | ||
판독문 | 허흥식 | ||
판독문 | 김용선 |
참고문헌
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高麗墓誌銘集成(第三版)』,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1984 | 許興植, 1984, 『韓國金石全文』中世上, 亞細亞文化社 |
논문 | 1984 | 이수건, 1984, 「高麗前期 支配勢力과 土姓」『韓國中世社會史硏究』, 일조각 |
단행본 | 1963 | 李蘭暎, 1963, 『韓國金石文追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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