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백처염경애묘지명(崔婁伯妻廉瓊愛墓誌銘)
- 시대
- 고려
- 연대
- 1148년(의종 2)
- 유형
- 묘지명·묵서명
- 크기
- 높이 30.3 너비 69.7 글자크기 1.2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 /각자 /서자
- 최루백(崔婁伯)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염경애(廉瓊愛 : 1100~1146)는 염덕방(廉德方)의 딸로, 25세에 최루백(崔婁伯)에게 시집왔다가 47세에 별세하였다. 최루백(崔婁伯 : ?~1205)은 수원의 아전 상저의 아들로, 15살 때 그의 아버지가 사냥 갔다가 범에게 물려죽었다.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산으로 가서 범을 발견하고는, 잠이 든 범을 도끼로 쳐서 죽이고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와 살을 가져와 장례 지내고,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살았다. 그 후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였는데 벼슬이 국자제주(國子祭酒)에 이르렀다. 그는 이러한 효행으로 인하여 『고려사(高麗史)』열전에 실렸고 조선시대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등에도 실려 있다. 지금도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에는 그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각이 있는데, 이 곳은 최루백의 사패지(賜牌地)였다고 한다. 염경애는 최루백과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으며, 묘지는 남편 최루백이 지었다.
판독문/해석문
전체 3개
해석문 | 김용선 | ||
판독문 | 허흥식 | ||
판독문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참고문헌
전체 9개 / 페이지 ( 1 / 1 )
단행본 | 2012 | 金龍善, 『第五版 高麗墓誌銘集成』, 한림대학교출판부 |
단행본 | 2004 | 김용선, 2004, 『고려 금석문 연구-돌에 새겨진 사회사』, 일조각 |
단행본 | 2003 | 任世權·李宇泰, 『韓國金石文集成 : 고려12 묘지명1』28, 한국국학진흥원 |
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高麗墓誌銘集成(第三版)』,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1984 | 許興植, 1984, 『韓國金石全文』中世上, 亞細亞文化社 |
논문 | 1982 | 朴龍雲, 1982, 「高麗時代 水州崔氏家門 分析」『史叢』26 |
단행본 | 1976 | 朝鮮總督府 編, 1976, 『朝鮮金石總覽』上, 亞細亞文化社 |
단행본 | 1976 | 劉燕庭, 1976, 『海東金石苑』下, 亞細亞文化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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