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직숭묘지(安稷崇墓誌)
- 시대
- 고려
- 연대
- 1135년(인종 13)
- 유형
- 묘지명·묵서명
- 크기
- 세로 26.0cm, 가로 49.5cm, 글자크기 1.0cm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안직숭(安稷崇 : 1066~1135)은 동주(洞州) 사람으로 초명은 직서(稷諝)였다. 아버지 안신조(安申祚)는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봉되었고, 어머니 김씨(金氏)는 낙랑군대부인(樂浪郡大夫人)으로 국자제주 좌간의대부(國子祭酒 左諫議大夫) 상빈(尙賓)의 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 짓는 것을 좋아하여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하여, 윤관(尹瓘)을 수행하여 송나라에 다녀왔으며, 1100년(숙종 5)에 내시(內侍)에 들어와 급사(給使)가 되었다. 임금이 공의 재능과 그릇을 보고 높이 쓰고자하여 그의 본래 이름인 직서(稷諝)를 대신하여 지금의 이름을 하사하였다. 1104년(숙종 9)에 과거에 급제하여 장사랑(將仕郞) 양온승동정(良醞丞同正)이 되었다가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 1113년(예종 8)에 사신으로 송에 들어가 대성신악(大晟新樂)을 받아왔는데, 그 후 고려의 종묘(宗廟)에서 제사지낼 때에 연주하는 바가 되었다.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에는 왕을 충실히 호위하였으며, 두 차례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事)를 거쳐 벼슬이 공부상서 삼사사(工部尙書 三司使)에 이르렀다. 1134년(인종 12) 치사(致仕)하였고 다음해에 향년 70세로 돌아가시니, 송림현(松林縣 : 지금의 경기도 장단군 경내) 경내 거봉산(炬峰山) 동쪽 기슭에 장례 지냈다. 수사공 좌복야 판공부사(守司空 左僕射 判工部事) 유자유(柳子維)의 둘째 딸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딸은 장사랑 양온령동정 이문저(李文著)에게 시집갔다.
판독문/해석문
해석문 | 김용선 | ||
판독문 | 김용선 | ||
판독문 | 허흥식 |
참고문헌
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高麗墓誌銘集成(第三版)』,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1984 | 許興植, 1984, 『韓國金石全文』中世上, 亞細亞文化社 |
논문 | 1984 | 崔虎林, 1984, 「高麗初期의 墓誌에 관한 一考察」『韓國學論叢』6,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단행본 | 1976 | 劉燕庭, 1976, 『海東金石苑』下, 亞細亞文化社 |
단행본 | 1968 | 李蘭暎 編 李丙燾 監修, 1968, 『韓國金石文追補』, 中央大出版部 ; 1976, 亞細亞文化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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