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묘지(劉載墓誌)
- 시대
- 고려
- 연대
- 1119년(예종 14)
- 유형
- 묘지명·묵서명
- 크기
- 높이 44.2cm, 너비 58.0cm
- 소재지
- 미상
- 서체
- 정서(正書)
- 찬자 /각자 /서자
- 윤이석(尹伊錫) / 미상 / 임겸(林謙)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유재(劉載 : ?~1118 )의 자는 군제(君濟)로, 중국 송(宋)나라 천주(泉州 : 지금의 중국 福建省 남동부) 온릉(溫陵)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며, 1089년(선종 6)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해동(海東)으로 건너왔다. 선종(宣宗)이 그를 문예(文藝)로 시험해보고 기뻐하여 감문위참군사(監門衛?軍事)로 임명하였다.숙종(肅宗)이 즉위하자 우사 겸지제고 동궁시독(右史 兼知制誥 東宮侍讀)으로 발탁되었으며, 얼마 후 남성시(南省試)를 주관하여 유생(儒生) 100여 명을 뽑았다. 1104년(숙종 9) 봄에 예부시랑 간의대부(禮部侍郞 諫議大夫)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선비 30여 명을 선발하였는데, 모두 당시의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천성이 온순하고 정직하였으며 꾸미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다. 벼슬이 수사공(守司空)에 이르게 되자 늙어서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마을에서 한가하게 지내다가, 향년 67세로 1118년(예종 13) 3월 15일 돌아가시니, 정의공(定懿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본 묘지는 1119년 3월에 북산(北山)의 남쪽에 개장하면서 만들어 묻은 것인데, 문인(門人) 윤이석(尹伊錫)이 글을 짓고, 진사(進士) 임겸(林謙)이 글씨를 썼다. 묘지는 과거에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소재지가 불명이다.
판독문/해석문
전체 3개
해석문 | 김용선 | ||
판독문 | 김용선 | ||
판독문 | 허흥식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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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高麗墓誌銘集成(第三版)』,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2001 | 金龍善, 2001, 『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단행본 | 1984 | 許興植, 1984, 『韓國金石全文』中世上, 亞細亞文化社 |
단행본 | 1976 | 劉燕庭, 1976, 『海東金石苑』下, 亞細亞文化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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