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의 돌아가신 추성좌운보사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대사 수대부 삼중태광 문하시중 판상서이부 삼사사 상주국 감수국사(推誠佐運保社功臣 開府儀同三司 檢校大師 守大傅 三重太匡 門下侍中 判尙書吏部 三司事 上柱國 監修國史)이고 수태사 중서령(守太師 中書令)을 추증받은 장화 이공(章和 李公) 묘지명 및 서문
장사랑 상서병부원외랑 지제고(將仕郞 尙書兵部員外郞 知制誥)로 비어대(緋魚袋)를 하사받은 이성미(李成美)가 짓다.
공의 이름은 자연(子淵)이고, 자는 약충(若沖)이며, 그 선조는 소성(邵城)
1 사람이다. 고조, 증조와 조부가 모두 귀한 ▨을 거쳤으므로 이름이 온 나라에 떨치고 왕가의 손을 잇게 하였다. 작고한 중추부사 이부시랑(中樞副使 吏部侍郞)이자 거듭 추증되어 사공(司空)이 된 한(翰)과, 낙랑군대부인 최씨(樂浪郡大夫人 崔氏)가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부친의 큰 누이는 안효국대부인(安孝國大夫人)인데 바로 ▨ 덕종· 정종(德宗· 靖宗) 두 임금과 지금 임금<文宗>의 외조모이니, 그 집안이 더욱 번성하여 실로 사직의 근원이 되었다.
공은 태어나면서부터 큰 도량과 빼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었고, 마음씨와 인품이 맑고 ▨ 그 빼어남이 남달랐다. 태평(太平)
2 연간에 현종(顯宗)이 학문을 장려하고 교화를 일으켜 친히 뛰어난 인재들을 뽑을 때, 공이 두 번째로 진사(進士)에 을과(乙科)로 급제하니
3, 앵수(鸎手)는 이리저리 나부끼고 용두(龍頭)는 값어치를 더하였다. 벼슬길에 나가 양온령(良醞令)이 되고, 얼마 있다 옮겨 어서유원관 직사관 비서성교서랑 감문위녹사참군사(御書留院官 直史館 秘書省校書郞 監門衛錄事叅軍事)가 되었다. 발탁되어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임명되자 승진의 영예가 조정의 질서에 부합되고, 임금의 뜻을 펼치는 능숙함이 오로지 대▨(大▨)에 돌아갔다. 곧 우보궐 지제고(右補闕 知制誥)에 임명되고 비어(緋魚)를 하사받았다.
덕종(德宗)이 우(禹)임금의 검소함을 계승하자 여러 차례 높은 품계를 거쳐 후▨(喉舌)의 직책
4에 뽑히니, 이 자리는 현량한 사람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곳이다. 중추원 우부승선(中樞院 右副承宣)을 지니면서 금자(金紫)를 받았다. 또 형부(刑部)와 이부(吏部)의 원외랑(員外郞)과 이부낭중 어사잡단 좌부승선(吏部郞中 御史雜端 左副承宣)에 임명되었다. 억울하고 정체된 옥사를 정밀히 결단하여 ▨하고, 전형(銓衡)의 권한을 바로 들어 잘못됨이 없었으며, 추상같은 법망을 다시 엄하게 펴서 임금과 가까운 사람이라도 조금이라도 용서하지 않았다.
정종(靖宗)이 왕위를 계승하자 대우가 더욱 두터워졌는데, 특별히 기거주(起居注)를 제수하고 나머지는 전과 같이 하였다. 또 내사사인 중추원지주사 급사중 지상서이부사 시랑 예빈경 조청·조의대부(內史舍人 中樞院知奏事 給事中 知尙書吏部事 侍郞 禮賓卿 朝請·朝議大夫)를 더하고, 다시 지이부사(知吏部事)가 되었다. 얼마 중추부사(中樞副使)에 임명되고 나머지는 전과 같았다. 다시 ▨▨대부 지중추원사 우산기상시 주국(▨▨大夫 知中樞院事 右散騎常侍 柱國)이 되었다. 또 중추사(中樞使)에 제수되고 나머지는 전과 같았다. ▨▨▨ 총애가 대낮에 ▨. 누가 만 백성의 풍족함을 그러모아서 뭇 사람을 빛나게 하고 높이 받들고 모두 우러르게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고굉(股肱)의 어진 ▨ 있어야 ▨사(▨事)가 편안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임금께서 요순(堯舜)[唐虞]처럼 시운을 열었으므로 직설(稷契)
5 같은 이도 그 신하가 될 수 있는 것이니, 곧 생각하건대 천하의 안위(安危)는 백시(伯始)
6가 아니면 찾아내지 못하고, 조정이 믿고 의지하는 곳은 곧 ▨ 공이 아니면 있지 않다.
검교상서우복야(檢校尙書右僕射)로 삼고, 이부상서 참지정사 판상서예부사(吏部尙書 叅知政事 判尙書禮部事)로 책립하였으며, 또 흥록대부 수사공 상주국(興祿大夫 守司空 上柱國)을 더해 주고, 멀리 서경유수사(西京留守使) ▨▨▨로 삼았으며 나머지는 전과 같이 하였다. 내사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로 책립하고, 또 특진 검교▨▨ 권판상서형부사(特進 檢校▨▨ 權判尙書刑部事)를 더하였다.
중희(重熙)
7 연간에 사직(社稷)을 건립하려던 일이 아직도 미루어지고 있자, 조서를 내려 옛 제도를 살펴서 새로이 단(壇)을 쌓게 하였다. 공이 그 일을 감독하여 적절하고 마땅하게 일을 마치자 임금이 수레에 고운 옷감을 가득 실어 몸소 보답함을 보였으며, 바라던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려 은택이 널리 ▨ 백성들에게까지 미쳤다. 영사(領使)의 중책으로 인하여 조서를 내려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더해 주었다. 그 해에 공의 큰딸을 봉하여 왕비로 삼고
8, 이어 수대위(守大尉)를 더하고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에 임명하였다. 또 검교태보 추성좌운보사공신(檢校太保 推誠佐運保社功臣)을 더하고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감수국사(門下侍中 判尙書吏部事 監修國史)에 임명하였다.
국가는 천심의 보살핌과 도우심에 순응해야 길이 나라의 근본이 굳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맏아들을 세워 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니
9, 임금의 장인[元舅]이라는 귀함으로 인하여 검교대사(檢校大太師)를 더하고, 또 수대부 중대광 삼중대광 판삼사사(守大傅 重大匡 三重大匡 判三司事)를 더하였다. 신묘년(1051, 문종 5 )에 지공거(知貢擧)가 ▨되니 뛰어난 인재들이 모두 공의 문하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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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추정(樞庭, 中樞院)에서 임금을 돕고 상부(相府, 中書門下省)에서 정책을 편 지 20여 년이나 되었으나, 국가의 이로움을 알아서 행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총척(寵戚)의 귀함으로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고, 작록(爵祿)의 중함으로 남에게 뽐내지 않았으며, 충정(忠貞)이 해와 달에 걸리니 예의가 겉모습에서 우러나왔다. 태산의 높음도 쓰러진 이삭에서 미리 노래로서 알리는 것이고, ▨ 태성(台星)의 빛남도 떨어지는 별에 먼저 징조를 보여 닦는 것이다. 병이 든 지 며칠 만인 신축년(문종 15, 1061) 8월 30일 묘각사(妙覺寺) 법우(法宇)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59세이다.
아, 슬프다. 임금의 슬픔이 비(后妃)의 친정을 에워싸고, 조정과 저자의 시끄러움도 거의 그쳤으며, 승려와 도사들도 눈물을 흘렸다. 임금이 바로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수(▨襚)의 예를 펴도록 하고, 다시 중귀(中貴)를 보내어 법부(法賻)의 의식을 관장하게 하였다. 조서를 내려 수대사 중서령(守大師 中書令)을 추증하고 시호를 장화(章和)라고 하였으니, 성황(聖皇)께서 국척 원신(國戚 元臣)을 지극하게 기리는 것이다. 공이 임종할 때에 잠깐 정신이 맑아져서 유언을 남겼는데, 모두 불교의 다비법(茶毗法)을 따르도록 하였다. 이에 하늘에 여쭙고 유해를 받들어 그 해 10월 초 6일에 임진현(臨津縣)
11 경내에 장례지내니, 뜻에 따른 것이다. 공은 낙랑군 경조씨(樂浪郡 京兆氏)
12를 아내로 맞았는데, 내조하는 부덕(婦德)이 진실로 일대(一代)에 으뜸 갔다. 왕비의 어머니인 까닭에 거듭하여 계림국대부인(雞林國大夫人)이 더해졌다. 아들이 8명 있는데, 첫째는 정(頲)으로 검교위위경 행상서우승 지합문사(檢校衛尉卿 行尙書右丞 知閤門事)이고, 둘째는 적(頔)으로 전중소감(殿中少監)이며, 셋째는 석(碩)으로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이며, 넷째는 의(顗)로 합문지(閤門祗候)인데 양주사(楊州使)가 되어 나갔으며, 다섯째는 소현(韶顯)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바로 유가업 대선장(瑜伽業 大選場)에 나아가 대덕(大德)이 되었으며, 여섯째는 호(顥)로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同正)이며, 일곱째는 전(顓)으로 공보다 일찍 죽었고, 여덟째는 안(顔)으로 예빈주부동정원(禮賓主簿同正員)이다. 딸이 3명 있는데 모두 임금에게 시집갔다. 큰딸은 연덕궁주(延德宮主)로 왕비이며 태자와 국원(國原侯)가 그 아들이다. 둘째는 수령궁주(壽寧宮主)가 되었으니 조선(朝鮮侯)가 그 아들이고, 셋째는 숭경궁주(崇慶宮主)이다.
13 대대로 번성함을 이어서 가문의 명성이 빛난 것은 글자가 생겨난 이래로 공과 비교하여 말할 수 있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슬프다, 명(命)은 하늘에 달린 것으로 사람이 능히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붓을 잡고 슬피 탄식하며 명(銘)을 짓는다.
푸른 언덕은 쓸쓸하고 고요한데, 찬 샘의 물소리는 급하기만 하다.
무덤 문이 한 번 닫히니 속세와는 영원한 이별이구나.
슬프다, 넓은 하늘에 물어볼 곳이 없으니, ▨나무가 급하게 부러짐을 애통해 하도다.
언덕과 골짜기가 변하여도 옥돌은 굳건하듯, 흰 눈 속 난꽃 향기는 흩어지지 않으리.
[출전 : 『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