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 시대
- 통일신라
- 연대
- 771년(혜공왕 7)
- 유형
- 종명·금구명
- 크기
- 높이 333cm, 구경(口徑) 227cm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 서체
- 서문(序文)-해서, 명문(銘文)-행서
- 찬자 /각자 /서자
- 김필오(金弼奧) / 미상 / 김부환(金符皖)· 요단(姚湍)
- 지정사항
- 국보
- 연구정보
개관
일명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는데, 성덕왕(聖德王)의 공덕을 기리고 중대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려는 목적에서 경덕왕(景德王) 때 계획되었다가, 혜공왕(惠恭王) 7년(771)에 완성되었다. 원래는 경주 봉덕사(奉德寺)에 있었는데, 봉덕사가 수몰된 뒤 세조 6년(1460) 영묘사(靈廟寺)로 옮겼으며,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다가, 1915년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다. 그 뒤 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찬자(撰者)는 조산대부(朝散大夫) 겸(兼) 태자조의랑(太子朝議郞) 한림랑(翰林郞) 김필오(金弼奧)이며, 서(序)는 한림대서생(翰林臺書生) 대나마(大奈麻) 김부환(金符皖)이, 그리고 명(銘)은 대조(待詔) 대나마(大奈麻) 요단(姚湍)이 썼다. 새긴 사람은 미상이다. 현존 최대의 동종으로 제작연대, 각부양식, 음질 등 모든 면에서 신라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국보이며, 높이는 333cm, 구경(口徑)은 227cm이다. 630자로 된 서문과 200자의 명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문(序文)은 해서체, 명문(銘文)은 행서체이다. 이 명문은 종명(鍾銘)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문장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여기에는 주종(鑄鍾)사업에 참가한 사람들의 관직을 통하여 당시 성전사원(成典寺院)의 실제 운영을 파악할 수가 있는데, 그들 가운데 김양상(金良相)은 혜공왕(惠恭王)을 이어 왕위에 올라 선덕왕(宣德王)이 되었다. 따라서 이 명문은 당시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장구조는 다음과 같다. 제액(題額), 찬자(撰者)서(序) : 夫至道~銘記于鍾也서문(序文) 서자(書者)명(銘) : 其詞曰~恒恒轉重찬자(撰者)와 명문서자(銘文書者)주종(鑄鍾) 사업에 참여한 속관(俗官)건립날짜 주종(鑄鍾) 기술자
관련 금석문
판독문/해석문
해석문 | 남동신 | ||
판독문 | 남동신 | ||
판독문 | 朝鮮金石總覽 | ||
판독문 | 황수영 | ||
판독문 | 今西龍 | ||
판독문 | 坪井良平 | ||
판독문 | 劉喜海 | ||
판독문 | 葛城末治 | ||
판독문 | 허흥식 |
참고문헌
단행본 | 2002 | 『한국고대금석문종합색인』 |
논문 | 2002 | 안영숙·이은희, 2002, 「聖德大王神鍾의 鑄造時期에 대하여」『年譜 -2001年度』, 慶州 國立慶州博物館 |
논문 | 2002 | 尹善泰, 2002, 「新羅 中代의 成典寺院과 國家儀禮 -大·中·小祀의 祭場과 관련하여-」『新羅 金石文의 現況과 課題』(新羅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 第23輯), 慶州市 新羅文化宣揚會·東國大 新羅文化硏究所 |
논문 | 2001 | 朴方龍, 2001, 「聖德大王神鐘 附屬施設物에 對하여」『慶州文化』7, 慶州文化院 |
논문 | 2000 | 鄭禮京, 2000, 「上院寺鍾과 聖德大王神鍾의 양식적 비교」『東岳美術史學』創刊號, 東岳美術史學會 |
단행본 | 1999 | 『성덕대왕신종』(종합조사보고서) |
단행본 | 1999 | 『성덕대왕신종』(종합논고집) |
논문 | 1998 | 이장무, 1998, 「성덕대왕신종」『한국사시민강좌』23, 일조각 |
단행본 | 1995 | 國史編纂委員會, 1995, 『韓國古代金石文資料集』Ⅲ, 國史編纂委員會 |
단행본 | 1992 | 韓國古代社會硏究所 編, 1992,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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