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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대왕 장릉비(端宗大王 莊陵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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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문
『영월의 금석문』
(앞면: 제액)
조선국 단종대왕장릉
(뒷면: 음기)
단종대왕의 이름(諱)은 (홍위)로 문종대왕의 적사1다. 어머니인 왕비 현덕왕후가 정통2 신유년(1441년, 세종 23년) 7월 23일에 왕을 낳으셨다. 무진년(1448년, 세종 30년) 왕세손에 봉해지고, 경태3 경오년(1450년, 문종 즉위)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임신년(1452년, 문종 2년) 5월 문종께서 승하하시자, 왕세자로서 왕위에 오르셨다. 을해년(1455년, 세조 즉위) 왕을 높여 상왕으로 삼으며, 공의온문 이라는 존호를 올렸다. 천순(명나라 영종 때의 연호, 1457~1464) 정축년(1457년, 세조 3년) 왕께서 강원도 영월군에 계셨는데, 그해 10월 24일에 홍서(임금, 왕족,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하셨다. 춘추(나이)는 열일곱이셨다. 영월군 북쪽 신좌을향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숙종대왕 24년 무인(1698년)에 '공의온문 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 이라는 시호를 추상하고 묘호는 '단종'으로 정했으며 능호는 '장(莊)'이라 하고 영녕전에 부묘(祔廟)하였다. 금상(영조) 9년 계축(1733) 능침에 비석을 세워 기록하도록 명하셨다.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
단종대왕 휘 ○는 문종대왕의 적자로, 모비는 현덕왕후 권씨이고 정통년간 신유년(세종23, 1441) 7월 23일에 탄생하였다. 왕은 무진년(세종30, 1448)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경태년간 경오년(문종즉위, 1450)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임신년(문종2, 1452) 5월에 문종대왕이 승하하자 대위를 이어 등극했다가 을해년(세조1, 1455)에 상왕으로 오르자 ‘공의 온문’이라는 존호를 올렸다. 천순년간 정축년(세조3, 1457)에 왕이 강원도 영월군에 있다가 이해 10월 24일에 승하하니, 춘추는 17세였고 영월군 북쪽 신좌을향(서북서쪽을 등지고 동남동쪽을 바라보는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숙종 24년인 무인년(1698)에 왕에게 ‘공의온문 순정 안장 경순 돈효 대왕’이라는 시호를 추가로 내리고 묘호는 ‘단종’, 능호는 ‘장릉’이라 하였으며, 영녕전에 부묘하였다.
금상(영조) 9년인 계축년(영조9, 1733)에 능에 표석을 세워 기록하도록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