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도질토기(陶質土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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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제창한 연구에 따르면 도질토기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신식의 와질 토기瓦質土器보다 고화도 소성의 토기군으로 흡수율이 전무하거나 약간 있는 정도이다. 소성 시 태토 중의 규산질이 용해된 것으로 보이는 유리질의 피막이 그릇의 전면全面을 덮고 있으며, 간혹 연소물의 탄炭이 부착되거나 자연유自然釉가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색조는 암자색, 칠흑색, 회색, 회청색, 회녹색이 있으며 시대에 따라 색조도 변화하는 것 같다.’ 즉 기왕의 김해식 토기로 분류된 토기군 안에서 회청색 경질의 것을 도질토기로 규정하고 그 출현은 삼국 시대의 시작과 궤를 같이 하며, 그 시점은 3세기 말 즈음으로 추정하였다. 신라·가야 토기로 분화하기 이전 영남 지방 공통 양식 토기에 속하는 고식 도질토기, 5세기 전엽에 신라와 가야 토기로 분화된 이후의 회청색 경질 토기군을 신식 도질토기로 구분하였다. 도질토기는 등요에 의해 1,000℃ 이상의 환원 상태에서 소성된 경질 토기라는 의견이 있다. 이전 시기의 원삼국 시대 와질 토기가 상대적으로 저화도의 환원염 소성 토기이며, 이 시기의 토기 가마로 추정되는 유구를 통해 와질 토기는 평요에서 소성된 것으로 보고 이 평요가 등요로 발전하면서 도질토기가 발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질 토기는 평요, 도질토기는 등요에서 소성되었다고 볼만한 근거는 분명치 않다. 도질토기의 출현 배경에 대해서는 제작 기법과 소성 기술을 고려하여 한대설漢代設, 웨저우요설越州窯設, 전국설戰國設, 재지설在地說(자체 발생설) 등이 제시되어 있으며 그 시기도 3세기 전반~말로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한편, 영남 지방 원삼국 시대 분묘에서 출토된 토기류 중에서, 본래 와질 토기의 기종이지만 도질로 소성된 것이 있고, 그 대다수는 기형이 일그러진 채 발견되었다. 소성도만을 고려해 이를 도질토기로 분류하기에는 문제점이 있으나, 그 정도의 고온을 낼 수 있었던 기술 또는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소성 온도를 도질토기 수준으로 올릴 수 는 있었으나 고온 소성을 이겨 낼 원료 점토를 사용하지 못해서 기형이 일그러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도질토기는 토기 자체의 경도 및 소성 기술뿐만 아니라 한반도 남부 삼국 시대라는 시공간성 및 그와 관련된 문화상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용어이다. 이 용어는 일제 강점기 김해 회현리 패총 발굴 조사 보고서에 제시된 도질 유청색 토기陶質黝靑色土器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 많은 연구 성과를 통해, 이제는 한국 고고학에서 삼국 시대 영남 지방의 토기 문화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개념으로 정착하였다. (김재철) |
참고문헌 | 도질토기 성립전야와 전개(최종규, 한국고고학보 12, 한국고고학회, 1982), 신라토기의 발생에 대하여(신경철, 한일고대문화의 제문제, 한일문화교류기금, 1986), 토기 소성기술 관찰법(홍진근, 한국 매장문화재 조사연구방법론 4,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이성주, 학연문화사, 2014), 신라토기의 발생과 양식의 성립(박광열, 영남의 고고학, 사회평론, 2015), 가야의 토기(정주희, 가야고고학개론, 진인진, 2016)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생산유적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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