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하구리 유적(慶州 下邱里遺蹟)_기와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999-1답, 1163-1~6답, 1163-7~9도, 1166답, 1166-1~4답, 1166-5구, 1183-3답, 1183-2구, 876답, 983-2전 일원에 위치한다. 하구리는 대부분 평지로 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탑들과 연제방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남서쪽에 구미산의 산줄기가 뻗어 있다. 유적은 하구 3리 현곡초등학교로부터 남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완만한 사면 하단부의 다경들에 해당한다. 유적은 1978년 금장리 가마의 발굴이 끝날 무렵에 확인되었다. 가마 중앙에는 지름 약 800cm, 높이 150cm의 원형 흙더미가 있는데, 여기에서 집중적으로 유물이 나왔고 진입로에서부터 논둑을 따라 기와 편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 다량의 소토 편과 벽체 편이 수습된다. 와전류는 약 340여 점에 이른다. 기와는 신라 양식 으로 막새와 평기와를 비롯하여 명문 기와, 특수 기와 등 다양하다. 수막새와 사래 기와의 수요처는 황룡사지와 월성에서 확인되었다. 암막새는 무악식無顎式으로 유려한 고식 당초문이 새겨졌는데, 쌍록 보상화문 전돌과 안압지 주변 동궁의 창건 와전으로 통일 신라 시대 직후에 제작되어 공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쌍록 보상화문 전돌은 앞 측면에 보상화 당초문과 사슴 무늬가 장식되고 그 상면에 보상화문이 시문되었는데, 안압지 동궁터에서 “조로이년 한지벌부군약소사 삼월삼일작강(調露二年 漢只伐部君若小舍 三月三日作康)…”의 명문이 새겨진 전돌 범이 발견되어 그 제작 연도를 확실히 밝힐 수 있다. 조로 2년은 서기 680년으로 동궁이 서기 679년에 축조되었기 때문에 창건 와전으로 무악식 당초문 암막새와 함께 금장리 가마에서 동시에 생산되어 공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가마는 다른 기와의 수급 관계를 통하여 6세기 후반부터 통일 신라 시대 직후인 7세기 후반까지 약 1세기 동안에 걸쳐서 경주 일원의 궁성과 여러 사원에 기와와 전돌을 생산하여 공급했던 가마로 밝혀졌다. (박헌민)
참고문헌 다경와요지출토 신라와전 소고(김성구, 미술자료 33, 국립중앙박물관, 1983), 신라와전(국립경주박물관, 2000)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생산유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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