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가곡리 유적(平澤 佳谷里遺蹟)_제철
설명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가곡리 287 일원에 위치한다. 무봉산(해발 208m) 서쪽 산자락이 끝나는 저평한 대지와 낮은 구릉에 자리한다. 평택 진위2 일반 산업 단지 조성 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는 삼강문화재연구원이 중앙부를 담당(2·3구역)하였고, 한울문화재연구원은 북쪽과 동쪽의 일부 지역(1구역)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였다. 2·3구역은 조사 지역을 5구역으로 구분하였는데, 원삼국 시대 주구 토광묘·토기 가마·제철로·폐기장 등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분묘까지 총 151기에 달하는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그 가운데 생산 유구는 2구역에서 원삼국 시대 토기 가마 1기, 제철로 2기, 폐기장 2기, 3구역에서 원삼국 시대 제철로 6기, 폐기장 5기 등이 확인되었다. 2구역에서 조사된 제철로 가운데 2-30호 제철로는 시굴에서 대구경 송풍관 편이 수습되었고, 발굴에서 제철로의 소결면과 피열 흔적이 관찰되었다. 제철로의 평면은 원형에 직경은 90cm이며 중앙부에 고열로 단단하게 피열된 점토 바닥이 있다. 경사면 아래쪽인 동쪽에는 재와 목탄이 혼입된 2-54호 폐기장이 넓게 확인되는데, 이는 제철로와 동반 관계로 보인다. 2-55호 제철로는 노爐의 일부가 2-54호 폐기장에 덮여 있었다. 제철로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2~3차례 재사용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1차는 원형의 수혈을 얕게 파서, 그 안에 점토로 원형의 구조물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잔존 규모는 직경 110cm이다. 2차는 1차의 점토 구조물을 방습 시설로 재사용하였다. 그 위에 노벽을 축조하였으나 현재는 노벽 일부만 남아 있다. 노벽에서 철재 편이 점토와 뒤섞여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철재를 재사용해 노벽을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잔존 규모는 직경 80cm이다. 다만 노벽에서 철재가 용착되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1·2차 조업의 성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3차는 2차의 바닥을 다시 방습 시설로 재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차를 바닥으로 하여 점토로 원형의 노벽을 만든 구조로 노의 바닥과 노벽에 철재가 두께 1~2cm 정도 용착된 상태로 노출되었다. 제철로 안에는 격자문이 시문된 대구경 송풍관 1점이 남아 있으며 규모는 직경 60cm, 깊이 20cm이다. 2-55호 제철로와 동반 관계인 2-70호 폐기장에서는 철광석·철재·산화 철괴·송풍관 편 등 다양한 제철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다. 2-70호 폐기장을 파괴하고 원삼국 시대 주구 토광묘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2-55호 제철로는 원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3구역에서 확인된 3-24호 제철로는 평면 원형에 직경 90~100cm이며, 깊이는 25cm이다. 배재부는 등고선 방향을 따라 나란하게 뻗어 경사면 아래쪽으로 ‘ㄱ’ 자로 꺾여 있으며 내부에서 철재 편·산화 철괴 편·송풍관 편이 출토되었다. 남쪽의 3-39호 철재 폐기장은 3-24호 제철로와 동반 관계로 판단된다. 3-1·2·18호 제철로는 평면 형태가 원형이며, 상부는 대부분 결실되었다. 바닥의 점토와 소결 부분만 잔존하고 있어 정확한 제철로의 구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잔존 크기는 직경이 30~90cm이며, 중앙부에 고열로 단단하게 피열된 점토가 두께 2~3cm로 확인되었다. 내부 출토 유물은 없으며 3-1호 노 주변으로는 연질 옹 1점이, 3-2호 주변으로는 연질 토기 저부 1점이 수습되었다. 3-20 ·21호 제철로는 평면 원형에, 피열 흔적만 확인되었다. 규모는 직경 90cm이다. 서쪽으로 인접한 3-19호 폐기장에서 철재와 산화 철괴·송풍관이 수습되었다. 다양한 크기의 제철로가 확인되었으며,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제련 공정부터 단야 공정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원삼국 시대부터 한반도 중부 지역에서 철 생산을 시작하였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1구역은 조사 지역을 크게 2구획으로 구분하였는데, 삼국~조선 시대 다양한 성격의 유구 175기가 조사되었다. 그 가운데 생산 유구는 삼국 시대 제철로 1기, 통일 신라 시대 기왓가마 4기, 시대 미상 목탄 가마 1기 등이 있다. 1구역에 서 확인된 제철로는 평면 형태가 원형으로 내측 규모는 지름 약 130cm, 잔존하는 노벽 높이는 10~30cm이다. 노의 바닥과 벽은 회흑색으로 두텁게 소결되었으며, 노벽 일부에서 철재가 확인되었다. 노의 바닥은 중앙이 오목한 형태로 굵은 모래와 목탄이 섞인 층으로 구분되며 하부 단면 조사에서 한 차례 보수하여 재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철로 남동 측에서 길이 675cm, 너비 20~33cm, 깊이 8~15cm 내외의 배재부가 조사되었으며 배재부 바닥에 철재가 부착되었고 내부에서 철재·철괴로 보이는 철재 등이 출토되었다. 제철로 서측에서는 철재가 부착된 소결면의 상부에서 삼국 시대 기와 편과 노의 벽체가 출토되어 삼국 시대로 편년된다. 가곡리 유적은경기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삼국 시대 제철로 유적으로 충주 칠금동·진천 구산리 유적 등과 비교하여 제철로의 지역 차이를 파악하거나, 바로 옆 2구역에서 확인된 제철로와 비교하여 시기에 따른 제철로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최영민)
참고문헌 평택 가곡리 유적(삼강문화재연구원, 2017), 평택 가곡리 유적(한울문화재연구원, 2017)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생산유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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