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스키타이문화(Schytian 文化)
설명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경까지 흑해 북안의 초원지역에서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족에 의하여 형성된 초기철기문화이다. 스키타이인은 사르마티아인(Sarmatian)에 의해 멸망되었으며 사르마티아인도 역시 유목민족으로 한동안 초원을 지배하다가 훈족에 의해 멸망한다. 이란 계통으로 알려진 스키타이인에 대한 기록은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歷史)’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기록에 남아 있다. 그리스인은 스키타이 동쪽 초원지대에 거주하는 유목민족을 통칭해서 사카인(Saka)이라고 했는데, 이는 중국 기록의 색인(塞人)에 해당한다. 스키타이는 아시리아(Assyria)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676∼652년에 등장하며, 스키타이인 이전에 살았던 키메르인(Cimmerians)이 스키타이에 의해 밀려났다는 기록이 기원전 722∼715년에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그 문화는 기원전 8세기 경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키타이족의 전성기인 기원전 6∼4세기에는 흑해연안 돈(Don)강에서 다뉴브(Danube)강에 이르는 지역에 풍부한 유적을 남겼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스키타이는 분포지역과 경제행위 등의 차이에 따라 왕스키타이, 농경스키타이, 경작스키타이, 유목스키타이의 4개 집단 등이 있었다고 한다. 스키타이의 유물로는 소위 ‘스키타이 삼요소’라고 불리우는 청동무기(靑銅武器), 말갖춤〔馬具〕, 동물장식(禽獸裝飾)이 대표적이다. 무덤은 움〔土壙〕에 통나무로 만든 나무방〔木室〕을 짜고 그 안에 덧널〔木槨〕을 넣고, 흙으로 봉분(封墳)을 쌓은 적석봉토분(積石封土墳)이 주를 이룬다. 스키타이 삼요소는 스키타이문화 뿐 아니라 동쪽으로는 중국 오르도스지역에 이르는 넓은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스키타이의 청동기문화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시베리아 자체에서 기원하였거나 동과 서쪽에서 동시에 기원하였다는 설이 제시된다. 전형적인 스키타이문화는 기원전 7세기 말엽에서야 나타나지만, 대형 나무방무덤〔木室墳〕 과 같은 일부 요소를 제외하면, 이 지역의 토착적인 청동기문화인 스루브나야 문화(Srubnaya culture)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스키타이의 역사와 문화는 기원전 7∼6세기의 전기와 기원전 5∼4세기의 중기, 그리고 기원전 3∼2세기의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스키타이족이 흑해 북안의 초원지역으로 진입하여 자신의 문화를 성립시키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유적과 유물은 그리 많이 발견되어 있지 않은 편인데, 기원전 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키로보그라드(Kirovograd)의 멜구노프(Melgunov) 쿠르간(Kurgan)과 그 출토유물이 대표적이다. 유적과 유물 전반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보아 유목적, 군사적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며 중기에 출현하는 정착된 형태의 촌락이나 농경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중기는 스키타이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대형 쿠르간이 쓰인 전성기다. 예컨대 체르또므일릭(Chertomyluik) 쿠르간의 높이는 20여m이며 왕의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를 포함한 총 4개의 무덤방이 발견되었다. 왕을 묻은 무덤방 주위에는 왕비, 시위병, 노예, 말을 순장(旬蔣)한 무덤방들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급격히 그리스화가 진행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러한 경향은 다양한 그리스계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증명된다. 한편, 중기의 각 성지에는 농업과 수공업터가 발견되어 다양한 산업이 각 지역별로 분화되어서 발전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중기에는 전통적인 통나무무덤방 대신에 계단식의 아치를 가진 돌방무덤이 나타난다. 역동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한 맹수나 사슴과 같은 우제류(牛蹄類) 동물이 장식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동물장식은 전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널리 쓰였지만, 그리스적인 예술표현기법도 널리 사용된다. 중기부터 스키타이는 사르마티아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어 점차 그 영역이 크리미아반도(Krym peninsula)로 축소되다가, 후기인 기원전 3∼2세기는 스키타이문화 는 거의 사라지고 사르마트의 문화가 번성하는 흉노-사르마트기가 된다. 그러나 사르마트의 문화 역시 스키타이의 문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문화적인 전통은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단검의 경우 원형고리가 달린 것이 주류를 이루며, 그 외에도 장검이 출현하는데, 동복(銅辯)이나 유공식(有孔式)화살촉과 토기 등에서 스키타이문화의 전통이 계속된다. (강인욱)
참고문헌 소련고고학개설(데.아.아브두신 저, 정석배 역, 학연문화사, 1994), 스키타이 동물양식(에.베.뻬레보드치고바 저, 정석배 역, 학연문화사, 1999), 시베리아의 선사고고학(최몽룡·이헌종·강인욱, 주류성, 2003)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청동기시대편)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스키타이문화(Schytian 文化)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