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중국의 신석기문화(中國의 新石器文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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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중국의 신석기문화는 서고동저라는 중국 대륙의 지형과 다양한 자연환경에 의해 지역적인 차이가 많다. 이를 크게 북방지구(北方地區), 황하유역(黃河流域), 장강유역(長江流域), 화남지구(華南地區)의 4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반도와 관련되는 중국 북방지구의 신석기문화는 요하유역에 흥륭와(興隆窪), 조보구(趙寶溝), 부하(富河), 홍산(紅山), 소하연(小河沿)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흥륭와문화는 내몽고 흥륭와유적을 기반으로 하며, 시기는 기원전 6200∼5400년 사이에 해당한다. 중국 최고의 취락유적이 조사되었으며, 토기는 ‘之’자문의 통형관(筒形罐)이 확인되고 있다. 조보구문화는 기하문의 토기가 유행하며, 일부의 토기에는 동물도형이 시문되기도 한다. 석기는 정교하게 만든 돌보습이 특징적이다. 부하문화의 주거지는 장방형에 속하고 내부에 위석노지(圍石爐址)가 있으며, 수렵과 농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홍산문화는 원시농경, 유목, 어업, 수렵 등 다양한 생업활동이 진행되었다. 토기는 홍색 바탕에 흑색문양의 채도가 있으며, 옥벽(玉壁), 옥환(玉環) 등 정교하고 다양한 옥기(玉器)가 출토된다. 여신묘, 적석총 같은 대형 제사유적이 중심이 되고 있기도 하다. 송화강유역에서는 신개류(新開流), 앙앙계(昻昻溪) 문화가 존재한다. 앙앙계문화와 신개류문화는 세석기(細石器)를 중심으로 한 문화이며, 주로 어로에 종사한 흔적이 보인다. 흑룡강성에서 길림성의 서부에 걸친 사구지대에서는 세석기를 주류로 하는 유목문화가 번성하였으며, 길림성의 중부지역에는 농경문화, 길림성 동부지역에는 농경을 기본으로 하면서 수렵도 이루어졌다. 요동반도에는 신락하층(新樂下層)문화와 소주산하층(小珠山下層)문화가 존재한다. 신락하층, 소주산하층 문화에서는 한반도와 관련되는 ‘之’자문토기가 출토되어 비교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황하유역에서는 노관대(老官臺), 자산(磁山), 배리강(裴李崗), 북신(北辛), 앙소(仰韶), 용산(龍山) 문화가 형성되었다. 노관대문화는 위수유역과 단강상류에 위치하며, 조, 수수를 비롯한 농경문화가 이루어졌다. 도기(陶器)는 홍도가 주류를 이루며, 규칙적인 배열의 묘지와 제사유구도 보이고 있다. 자산과 배리강 문화는 중원지구에 있으며, 이곳은 강수량이 많아 농경에 좋은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다. 토기는 승석문(繩蓆文)토기, 채도(彩陶), 양이부호(兩耳附壺) 등이 출토되며, 빗살문이 있는 토기나 양이부호는 중국 동부와 한반도에서도 보이는 유물이다. 북신문화는 산동성 남부에서 강소성 북부에 분포한다. 자산과 배리강 문화의 초기문명이 황하를 따라 동진하면서 산동성으로 들어와 북신문화가 생성되고, 그 후 대문구(大汶口)문화, 앙소문화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앙소문화는 하남성, 산서성, 협서성에 분포하고 있으며, 토기는 승고문(繩叩文)을 거칠게 새긴 도기와 채도가 있다. 돌보습, 괭이의 농경구로 곡물을 재배하고, 이를 수확하는 돌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용산문화는 농경기술의 진보가 엿보이며, 토기는 흑도가 등장하고 토기제작의 전업화가 이루어진다. 대략 앙소문화는 기원전 6000∼5000년, 용산문화는 기원전 4000년 전후의 연대를 보이고 있다. 산동성에는 용산문화에 앞서는 대문구(大汶口)문화가 존재하며, 일찍이 앙소문화와도 교류가 이루어졌다. 황하의 상류에서는 앙소문화의 영향을 받은 마가요(馬家窯)문화, 용산문화와 관련된 제가(齊家)문화가 존재하였다. 이 지역은 채도가 유행하며, 농경과 목축을 기반으로 문화가 번성하였다. 장강유역의 신석기문화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장강 중류역에는 팽두산(彭頭山), 대계(大溪), 굴가령(屈家嶺), 석가하(石家河) 문화, 장강 하류역에는 하모도(河姆渡), 마가빈(馬家浜), 청련강(靑蓮岡), 숭택(崧澤), 양저(良渚) 문화 등이 존재한다. 팽두산문화는 절강 하모도유적보다 이른 시기에 중국 최고의 야생벼가 재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기는 원저의 심발, 완, 사발에 승석문이 주류이며, 석기는 돌도끼, 갈돌, 원반형석기, 긁개, 찍개 등이 보인다. 대계문화는 장강 중류역과 한수유역의 문화이며, 앙 소문화와도 접촉한다. 환호(環濠)가 만들어지며, 벽돌을 사용하여 주거가 만들어져 취락이 형성된다. 또한 수리시설을 이용하여 도작농경이 정착되었다. 토기는 홍도가 주류이며 취사, 저장, 식기 등이 셋트로 제작된다. 굴가령문화는 호북성 서북부와 장강 남안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황하유역의 앙소문화와 용산문화의 중간 시기에 해당한다. 하모도문화는 장강 하류역에서는 가장 빠른 시기의 하모도유적으로 대표된다. 이 유적에서는 목조건축 유물과 목기, 골각기, 대량의 벼가 발견되고 있다. 토기는 흑도가 주류이며, 골제 농경구로 벼농사를 짓고, 농경취락이 형성되었다. 또한 개, 돼지, 양 등의 가축을 길렀으며, 수렵과 어로에도 종사하였다. 특히 하모도유적의 도작농경은 장강유역에 확대되어, 절강성의 마가빈문화, 강소성과 안휘성(安徽省)에 이르는 청련강문화, 북부의 양저문화, 호북성에서 하남성 남부의 굴가령문화기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화남지구에는 광동성의 독석자(獨石仔), 서초산(西樵山) 유적, 광서성에는 백련동(白蓮洞), 보적암(寶積岩), 증피암(甑皮岩) 유적 등이 분포한다. 독석자유적에서는 빠른 시기의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상층이 기원전 13,000년 정도의 연대가 나왔다. 생업에 있어서 어로, 채집, 수렵에 종사하며, 초기농경이 이루어졌다. 이 지역의 토기는 기하학적인 인문(印文)을 시문하는 인문도(印文陶)가 출토되고 있으며, 석기는 첨상기(尖狀器), 모룻돌, 돌도끼, 찍개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신석기문화는 초기부터 농경과 가축의 사육에 의한 문화가 지속되었으며, 농경과 관련하여 다양한 형태의 농경구가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농경의 작물은 자연환경의 차이에 따라 황하유역과 장강유역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황하유역에서는 조, 피, 수수 등의 곡물농경이 주류를 이루며, 장강유역에서는 주로 벼농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정주생활이 시작되면서 취락을 이룬 마을이 생겨나며 개, 돼지, 소, 양 등의 가축을 사육하였다. 농경의 진전과 함께 각종 생산도구가 제작되었으며, 저장, 취사, 제사에 사용되는 다양한 토기와 장신구로 활용된 정교한 옥기가 제작되기도 하였다.(이상균) |
참고문헌 | 中國新石器文化(張之恒, 南京大學出版社, 1988), 중국고고학연구(정한덕, 학연문화사, 2000), 紅山渚文化硏究槪覽(徐子峰, 中國文史出版社, 2004)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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