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릉
- 왕릉명
- 사릉
- 능주명
- 제6대 단종비 정순왕후
- 왕릉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 조성연대
- 1521년 사묘로 조성, 1699년 봉릉
- 왕릉형태
- 단릉
능의 조성
사릉(思陵)은 단릉 형식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정순왕후도 부인으로 강봉된 상태에서 승하하여 능이 아닌 묘로 조성되었다. 묘는 양주 건천면에 위치한 단종의 생질인 해평부원군 정미수의 선산에 자리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장릉과 함께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다. 처음에 단종은 영월에 장사지냈고, 왕후는 양주에 장사지냈다. 이때 그전대로 증수하고, 인산의 제도에 따랐다. 이듬해 3월 초1일에 대왕의 능을 봉하고, 2월 20일에 왕후의 능을 봉하였다. 사릉의 홍살문의 축과 정자각, 봉분의 축이 일치하는 직선형 배치를 하고 있다.
능주 소개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의 본관은 여산, 성은 송(宋)씨, 부친은 판돈녕부사 송현수(宋玹壽)이다. 단종의 비로 1454년(단종 2)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21년(중종 16) 6월 4일에 승하하였다. 1455년(세조 1) 세조의 찬역으로 단종이 왕위를 내놓고 상왕이 되자, 왕비도 ‘의덕 왕대비(懿德王大妃)’로 봉해졌다. 이후 1457년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왕비도 ‘부인’으로 강봉되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되면서, 정순왕후로 추복되었다. 시호를 ‘정순(定順)’, 휘호는 ‘단량 제경(端良齊敬)’, 능호는 ‘사릉(思陵)’이라 하였다. 정순왕후는 살아있을 때에도 성내에 거처하지 않고, 동교에 거처하면서 노릉(추복되기 전 단종의 능)을 멀리서 바라보기를 원하였으므로, 조정에서 동문 밖에 집을 지어주고 영빈 정동이라 불렀다. 그러나 따로 초가집 두어 칸을 짓고서 거처하며 소복 차림으로 소식하며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왕릉탐방
사릉(思陵) 구조보기
왕릉살펴보기는 PC화면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 미술문화유산연구실
- 담당자 : 박지영
- 문의 : 042-860-9194